《 “바이올린은 6대뿐인데, 연주자는 그 두 배라고 생각해 보세요. 연습 시간에도 15∼20분씩 교대해 가며 겨우 악기를 만져 볼 수 있었죠.” 세계 최초로 단원 전체가 흑인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인 콩고민주공화국의 ‘킴반기스트 심포니’의 상임지휘자 아르망 디앙기엔다 씨(49)는 오케스트라 창단 당시의 열악한 환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아르코 창작음악제’에서 한국의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위해 내한한 그를 8일 만났다. 》
민항기 조종사 출신으로 정식 음악교육을 받아 본 적 없는 그가 킴반기스트 심포니를 만든 것은 서른살 때인 1994년. “교회 목회 일을 하셨던 조부님과 아버님이 피아노를 치는 걸 어려서 자주 봤어요. 교회 성가대 공연도 늘 접할 수 있었으니 나름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셈이죠. 그러다가 벨기에에서 조종사 연수를 받던 1985년 조국인 콩고민주공으로 휴가를 왔다가 처음 악기(첼로)를 접하게 됐어요.”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나섰지만 오랜 내전과 가난으로 황폐해진 콩고민주공에서 악기를 구하는 것부터가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중고 바이올린 몇 대가 전부였어요. 현이 끊어지면 자전거 브레이크 줄이나 전화선을 재료로 수리하고, 망가진 활 대신 낚싯줄로 만든 활을 쓴 적도 있었지요.”
합주 악보를 구할 수 없어 피아노 파트 악보만 보고 나머지 악기들의 악보를 재구성해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연습장소가 없어서 파트별 연습은 그의 집과 마당에서 하고, 합주는 빈 창고를 빌려서 1주일에 2번씩 소리를 맞추는 게 전부였다. “보수가 없기 때문에 단원 대부분이 교사, 은행원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한두 시간씩 걸어서 연습 장소로 오는 단원도 많습니다. 음악을 향한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할 정도로 악단의 역량이 커졌지만, 공연을 해도 들어줄 귀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국 관객 대부분이 일평생 클래식 공연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던 것. “관객의 반응요? 솔직히 ‘졸린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웃음)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는 과도기적 상황이니까요.”
킴반기스트 심포니는 2010년 독일 영화인들이 이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킨샤사 심포니’를 제작해 각종 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지난해 미국 CBS의 간판프로 ‘60분’에도 소개되면서 디앙기엔다 씨를 만나보려는 세계 음악계의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명예단원에 추대되기도 했다.
“그 영화가 많은 것을 바꿔놨습니다. 독일 음악가들이 콩고민주공으로 와서 단원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악기를 보내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저희 단원들을 교육해 주실 분이 나서 주시면 정말 좋겠네요.”
그의 꿈은 아직까지 한 번도 콩고민주공을 떠나보지 못한 단원들을 데리고 외국 무대에서 연주해 보는 것. 연주 레퍼토리에 콩고민주공화국인의 정서가 담긴 곡을 늘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가 ‘자유의 숨결’이나 ‘심포니 A 마이너’ 같은 연주곡을 작곡한 이유다. 자작곡 설명을 부탁했더니 “슬픔 속에 머물지 않겠다는 각오와 희망, 양보와 화합을 통한 갈등의 치유가 주제인 곡”이라고 했다. 오랜 내전으로 분열된 조국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희 연주가 국민들에게 사랑과 평화, 화해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날 땡볕 아래서 연습하는 어린 단원들을 위해 쾌적한 연주 환경을 갖춘 음악학교도 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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