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세 자매’의 인터미션 중 관객 반응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따라 화장실로 가던 10대 초반 남자아이의 말. 다음은 애인을 이끌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던 긴 생머리 여인이 흘리고 간 말이다.
유리문 앞에 서서 어둠 속 빗줄기를 바라보며 2분 정도 고민했다. 인터미션 안내방송을 맡은 꿀R긴 역의 이현균은 극중 대사를 본떠 “쉬다가 집에 가면 돼요, 안 돼요?”라고 했다. 남녀 커플의 뒤를 따라 문을 밀고 우산을 폈다. 도무지 객석에 다시 앉아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며 헤아릴 자신이 없었다.
또 안톤 체호프다. 프로그램 북 문장마다 전설적 극작가의 대표작에 대한 경외감이 오롯하다. 그 경외감이 무대 위 배우들에게서도 그대로 읽힌다. 세 자매 올가(우미화), 마샤(김지원), 이리나(장지아)와 그들을 둘러싼 8명의 인물은 한결같이 혁명 직전 러시아에서 엊저녁 서울로 건너온 듯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무대를 지켜보며 줄곧 든 생각은 ‘200년 전 러시아 사람들이 저리 어색하게 대화했을까’였다. 연극은 반드시 ‘연극적’이어야 할까. 유명한 외국 작가의 명작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는 얼마만큼의 경외감과 부담이 필요한 걸까.
막 독서에 취미를 붙인 10대로부터 고전을 떼어놓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체호프는 109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오늘 서울의 연극무대가 그를 기리는 제사상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 밥상 받을 주인공은 살아있는 눈앞의 관객들이다.
7월부터 죽 지켜본 체호프 작 연극 중 ‘체호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즐거움’보다 ‘관객에게 체호프의 이야기를 전하는 즐거움’을 무겁게 여겼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부족한 소양과 어설픈 취향 탓이겠으나, 이대로라면 더이상의 체호프는 사양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