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신년축시 펜으로 직접 써
독립기념관 회보에 실으려다 친일이력 문제돼 게재 불발된 것
‘국화 옆에서’의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사진)의 미발표 육필 시가 발굴됐다. 해당 작품은 시인이 1992년 신년 축시로 지은 ‘1992년의 첫날 아침에’라는 제목의 시. 원고지 6장 분량으로 첫 장에 시인이 펜으로 직접 쓴 ‘미당 서정주’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시는 신년을 맞아 조상과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며 민족의 통일과 자주 독립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북쪽의 백두산 변두리에서도/남쪽의 한라산 골짜기에서도/이 나라의 어느 벌판 어느 바닷가에서도/우리 가족들의 거짓 없는 마음은/누구나 다/그 넋들의 한맺힌 소원의 소리를/우리 넋으로 알아듣고 있나니,…”
특히 이런 민족의 숙원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한겨레끼리의 진정한) 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한 구절은 작금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도 못먹을/그 알량한/경제니 정치 이념의 유행에만 놀아나서/고집하고 대립하고 피 흘려 싸웠을 뿐,/서로 사랑해야 할 진정을 팽개쳤기 때문이다.”
이 시는 정상동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심의위원이 천안 독립기념관 기획홍보팀에서 근무하던 1991년 미당에게 직접 청탁해 받은 작품이다. 정 위원은 “당시 청소년들의 독립기념관 관람감상문 심사위원장이셨던 미당 선생께 독립기념관 회보에 실릴 신년 축시를 부탁해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는 회보에 발표되지 못했다. 회보 편집위원들이 “친일 이력이 있는 시인의 시를 독립기념관 회보에 게재할 수 없다”고 반대했기 때문. 사정을 전해들은 미당은 시를 돌려받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20년 넘게 잠자던 미당의 시는 최근 정 위원이 옛 서류를 정리하다 발견했다. 정 위원은 “미당 선생이 말년에 재직했던 동국대에 기증하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新年祝時 <1992년의 첫날아침에> 미당 서정주
1992년의 이 첫날 아침에도 푸른 소나무사이나 대나무사이 단군 할아버지의 넋과 순국 선열들의 넋과 또 돌아가신 모든 옛어른들의 넋이 깃드리어 지켜보고 계심을 우리는 느끼나니, 아니, 어느 메마른 두메의 어느 시든 풀잎 사이에서도 이 나라의 통일과 자주독립만을 바래는 그분들의 넋이 기다리고 계심을 우리는 마음속으로 뼈저리게 느끼나니 우리들의 가족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딸과 손자손녀들 모다 오늘은 나란이 앉어 돌아가신이들의 그 넋의 소원을 가슴으로 그득이 듣고 있나니, 북쪽의 백두산 변두리에서도 남쪽의 한라산 골짜기에서도 이나라의 어느벌판 어느바닷가에서도 우리 가족들의 거짓없는 마음은 누구나 다 그 넋들의 한맺힌 소원의 소리를 우리 넋으로 알아듣고 있나니, 이 고스란이 또 한번 오신 새해 새아침에 우리들 각자가 옷깃 여미고 또한번 스스로를 물어보게 되는 것은 “그럼 안되는건 무엇때문이냐?”는 것이다. 그래 하늘의 대답을 우리는 마음속에서 알아듣는다- “그것은 너희들이 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다. 개도 못먹을 그 알량한 경제니 정치 이념의 유행에만 놀아나서 고집하고 대립하고 피흘려 싸웠을 뿐, 서로 사랑해야할 진정을 팽개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회복해야할건 한겨레 끼리의 그 진정한 사랑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