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바닷가에 홀로 서서 어둠을 밝히는 등대는 주로 낭만적 이미지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한국의 등대들이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조성됐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제주 제주시 애월읍에서 23일 문을 여는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이 개관을 앞두고 등대를 해양문화사적으로 탐구하는 학술모임을 연다. 15일 제주대 해양과학대에서 ‘제주 등대의 해양사적 의미망과 미래적 전망’을 주제로 여는 심포지엄이다. APOCC는 해양문화사학자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해양문화를 인문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 사회법인이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기원전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앞 파로스 섬에 세워진 파로스 등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1903년 인천 팔미도등대를 시작으로 1912년까지 등대 200여 기가 세워졌고 그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40여 기다. 팔미도등대는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미리 살펴본 발표문에서 주 교수는 등대가 제국의 배를 인도하는 ‘제국의 불빛’으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등대의 출발은 제국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했음을 알려 준다”며 “메이지(明治) 시대 이래로 영국 등대를 모범으로 삼은 일본의 등대 기술이 한반도로 밀려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1894년 청일전쟁 때 지금의 경기만 풍도 부근에서 일본 함선과 청나라 함선이 교전을 벌였는데 등대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일본 상선의 해난 사고도 빈번히 발생하자 일본은 등대 건설을 위해 한국의 전 연안을 측량했다”고 밝혔다. 이어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급하게 항로표지를 설치할 필요를 느껴 평북 철산군 압록강변의 대화도등대, 전남 여수시 거문도등대, 신안군 칠발도등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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