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이현석(44)은 클럽 ‘스카이 하이’에서 만나자고 했다. ‘스카이 하이(저 하늘 높이)’는 이현석의 데뷔 앨범(1992년) 제목이자 연주곡 이름이다.
14일 오전 찾아간 서울 창전동의 ‘스카이 하이’는 이름과 반대였다. 지하 1층의 100m²짜리 작은 공간에 무대는 있지만 객석은 없고 어둠침침한 실내에 이현석 혼자 있었다.
이현석은 ‘학창시절’로 기억된다.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등장한 노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학창시절을 나는 사랑할 거’라는 예쁜 멜로디의 노래는 1994년 ‘가요톱텐’ 10위 안에 들었다.
동그란 안경에 마르고 선한 얼굴. 서태지와 닮은 속주(速奏)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잉베이 말름스틴, 에릭 존슨 같은 해외 연주자 부럽잖은 초절기교의 기타 연주에 친숙한 멜로디를 결합한 ‘스카이 하이’ ‘달려라 번개호’ 같은 연주곡도 라디오 전파를 많이 탔다.
이현석이 최근 20주년 기념 앨범을 냈다. 2005년 5집 ‘마이셀프’ 이후 8년 만이다. ‘학창시절’ ‘스카이 하이’ ‘치고이너바이젠’ 같은 이전 곡을 새로 연주해 녹음했고 신곡 4개를 보태 32곡을 두 장의 CD에 담았다.
모든 곡의 녹음, 믹싱, 마스터링을 ‘스카이 하이’에서 이현석 혼자 해냈다. “한철재(베이스) 노호현(드럼) 김세호(보컬) 같은 뛰어난 연주자들 도움도 받았죠. 20년 된 이현석이 이렇게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창시절’은 여전히 방송을 타지만 이현석은 10여 년간 ‘원 히트 원더(한 곡만 히트시키고 잊힌 가수)’로 남았다. ‘현실 비관하다가 천재 로커는 외톨이야/메탈하다가 우린 완전히 모두 개털이야’라 자조하는 신곡 ‘개털이야’는 ‘우기며 버티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힘들게 찾아온 좋은 기회 차버리고’로 시작한다. 이현석은 “‘학창시절’로만 기억되는 현실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기타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쯤 미국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고3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제 연주를 본 미국인 친구들이 슈라프널 레코드(기교파 기타리스트 전문 미국 음반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보라고 부추겼어요. 놀랐죠. 중3 때부터 독학한 기타를 부모님 몰래 침대 밑에 숨겨두고 쳤는데 스스로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여름방학 귀국길에 혹시나 하고 가져온 데모 테이프로 서울음반에 픽업됐고 빼어난 연주로 국내 음악계에서 금세 화제가 됐다. 미국 대학에 다닐 때 한국 고교 시절을 그리워하며 쓴 ‘학창시절’은 그를 한때 인기 가수로 만들었지만 생계조차 쉽지 않은 연주자의 길로도 몰았다.
2008년 라이브 클럽 ‘와스프’를 인수해 ‘스카이 하이’를 열고 인디 헤비메탈 그룹들에 무대를 열어줬다. 지하 클럽 이름이 왜 ‘스카이 하이’일까. “지하실 구석에서 어두운 것보다는 밝고 희망적인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지드래곤 팬인 아들은 제 음반에 관심 없지만 이건 제 소중한 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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