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호주로 유학 와서 대학원생 신분으로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할 때였어요. 도서관 동양학 서가에 중국과 일본 관련 책은 가득한데 한국을 다룬 책은 거의 없는 거예요. 그때의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한국의 좋은 작품을 번역해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최근 수상자를 발표한 대산문학상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영역본(2010년·글로벌 오리엔탈 출판사)으로 번역 부문상을 받게 된 최양희 전 호주국립대 교수(81)는 팔순을 넘긴 지금까지 한국 문학 번역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영문학자 1세대인 고 최재서 전 연세대 교수의 차녀로 1965년 호주국립대로 유학해 그곳에서 교수로 재직한 그는 ‘한중록’(1985년)과 ‘허난설헌시집’(2003년) 같은 고전문학 작품을 영역해 소개해 온 번역가다. 미국 코넬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허난설헌시집’ 영역본으로 2005년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이번에 번역상을 받게 된 ‘열하일기’ 영역본은 심사위원회(서지문 서태부 안선재 장경렬 정정호)가 “(본심에 오른 다른 작품에 비해) 크고 작은 번역의 오류가 가장 적었다”고 평가한 작품. 하지만 순수 번역에만 3년, 책 출간까지 5년이나 걸린 이번 작업은 고전 번역 베테랑인 그에게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정조 때의 문체반정 영향으로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중국 고문을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 문체로 지었지요. 한국 고전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도 겨우 8쪽 번역한 뒤 ‘너무 어렵고 말의 뜻이 애매하다’며 포기했던 작품이에요. 게다가 여러 국역본 판본들의 내용과 의미 차이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작업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지요.”
한자를 모르는 서양인 편집자에게 번역에 대한 자세한 조언을 듣기 어려웠던 탓에 인쇄 과정을 뺀 모든 작업이 그의 몫이었다. 이제 골치 아픈 번역일은 접고 여생을 즐겨도 될 법한 나이에 그런 고생을 자청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근 확인해 봤더니 제가 번역한 ‘열하일기’가 영미권과 유럽 지역 도서관만 570곳, 그 외 지역의 도서관 392곳에 비치됐더군요.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결국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빠른 길은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우리 문학 작품을 번역해 알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국내 문학 작품의 번역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의식해 현대 작가의 작품에 몰리는 세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세계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우리 현대문학 작품의 번역은 환영할 일이지요. 그렇다고 현대문학에 비해 번역에 많은 품이 드는 고전 작품이 외면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최 전 교수는 신경통 때문에 좋아하는 정원 손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다만 덕분에 생긴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에 더 많이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음 달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대산문학상 시상식 일정에 맞춰 내한할 계획이다.
“수상 소식을 접한 한국에 계신 친지분들이 수상식에 꼭 가야겠다고 야단이세요. 호주 유학 이후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들도 계신데 그분들과 만날 생각에 시상식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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