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라 트라비아타’ 등 인지도 높은 몇몇 작품만 매년 되풀이… ‘그 나물에 그 밥’ 쏠림현상에 공연품질 저하 우려 커져
오페라 ‘카르멘’이 일주일 간격을 두고 잇달아 막을 올린다. 국립오페라단은 21∼2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카르멘’을 올리고, 고양문화재단이 자체 제작한 ‘카르멘’은 28일∼12월 1일 고양아람누리 극장에서 공연된다.
제작 환경이 열악하고 오페라 관객층이 두껍지 않아 오페라 제작 편수 자체가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연출의 차이는 있지만 ‘비교해 보는 재미’를 찾으라는 것은 사치스럽게 들린다.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은 3회 공연 전석이 매진됐지만 고양문화재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티켓 판매로 고전하고 있다.
‘카르멘’을 비롯해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투란도트’ ‘리골레토’ ‘라보엠’은 해마다 한국 오페라 무대에서 빠지지 않는 ‘터줏대감’들이다. 올해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에 오른 베르디의 ‘오베르토’나 로시니의 ‘비단 사다리’,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한국 성악가 사무엘 윤이 활약한 바그너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은 한국 무대에서 접할 길이 요원하다.
올해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고양아람누리,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 오페라는 모두 44편. 각기 다른 단체에서 제작한 오페라 갈라(하이라이트 공연)가 일곱 차례 공연돼 가장 많았으며 ‘라 트라비아타’가 네 차례, ‘투란도트’ ‘리골레토’ ‘토스카’가 두 번씩 무대에 올라 그 뒤를 이었다. 올해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베르디 작품이 많이 올라갔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단골 작품들은 해마다 큰 변함이 없다. ‘라 트라비아타’는 2010년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됐다.
오페라의 유명한 장면만 모아 꾸미는 갈라나 몇몇 특정 작품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기업 협찬과 기본적인 모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민간 오페라단의 경우 기업 협찬 없이는 오페라를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 갈라는 무대 세트나 의상,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설 오페라단 단장은 “한국에서 잘 공연하지 않는 오페라를 기획해 기업에 협찬 제안서를 냈더니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이런 작품을 협찬해 달라고 들고 올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인지도 높은 오페라가 아니면 제작 자체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베세토오페라단의 강화자 단장은 “국내에 오페라 마니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친숙한 작품이 아니면 관객이 잘 찾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런 관행이 반복되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 식으로 적당히 흥행하는 작품을 손쉽게 고르고, 공연의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관성적으로 작품을 올리는 일이 빚어진다. 모처럼 마음먹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재미없는 오페라에 실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음악평론가는 “한 오페라에서는 공연이 엉망인 것은 둘째 치고 공연이 끝난 뒤 단장이 꽃마차를 타고 무대에 등장하는 어이없는 일도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오페라의 앞날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올해 10월 국립오페라단이 올린 바그너 ‘파르지팔’의 성공을 그 희망의 근거로 꼽았다. ‘파르지팔’은 3회 공연에 유료 객석 점유율 88%를 기록했다. 음악계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이 과감하게 신작을 무대에 올리고 오페라 공연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음악칼럼니스트 한정호는 “‘파르지팔’은 낯선 오페라였지만 일반 관객들의 열띤 호응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200석이 3회 공연 내내 가득 찼다. 오페라의 저변이 좋지 않다기보다는 볼 만한 새로운 작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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