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강제 징용돼 타국에서 생을 마친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일본 땅에 세워진다. 한국 정부와 일본 지자체가 함께 추모비를 세우는 건 처음이다. 특히 비문에 ‘강제로 동원됐다’는 표현이 포함돼 관심이 모아진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민간인 강제 징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사루후쓰(猿拂) 촌 공동묘지에서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추모비 건설 논의는 박인환 위원장이 지난해 4월 사루후쓰 촌을 방문해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위원회와 마을 사람들 사이의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은 한국인 강제노역자들의 유골을 찾는 일본의 시민단체 홋카이도포럼이 맡았다.
200여 명의 홋카이도 출신 지식인으로 구성된 포럼의 인사들은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포럼의 공동대표인 재일교포 2세 채홍철 씨는 “다행히 이곳 주민들은 자기 나라에서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을 흔쾌히 승낙했다”고 밝혔다. 일부 주민은 “오히려 우리 가해자 측에서 먼저 추모비 건립 논의를 했어야 했는데 피해자 측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니 우리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모비 건립에는 한국의 정부예산 1500만 원과 일본 사루후쓰 촌에서 지원한 500만 원 등 총 2000만 원이 들었다.
추모비는 높이 2m, 가로 2m, 세로 1m 크기로 상단에는 ‘기억, 계승(記憶, 繼承)’이란 글자가 쓰여 있고 하단 앞뒷면에는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로 추모비문이 새겨져 있다. 특히 비문에는 “한반도에서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로’ 동원되어 일을 하였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박 위원장은 “현재까지도 일본은 한국의 민간인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추모비에 처음으로 ‘강제’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주민 수가 8000명가량인 사루후쓰 촌 근처에는 1943, 1944년까지 일본 육군의 아사지노(淺芽野) 비행장 건설 공사 현장이 있었다. 위원회는 공사현장에 118명의 한국인이 강제 동원돼 참혹한 노역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바로잡습니다]
◇21일자 A2면 ‘강제 징용 명기한 한인 추모비, 日에 첫 건립’ 기사에서 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최홍철 씨’는 ‘채홍철 씨’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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