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자신들의 역사공간을 확대하려고 한반도를 겨냥한 동북공정 외에도 2003년부터 탐원공정(探源工程)이라는 이름의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탐원공정은 5000년 전 하상주(夏商周)시대부터 열리는 중국 역사의 시원을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 공정이 진행되면서 중국 도처에 삼황오제 관련 유적지가 만들어졌다. 2008년 허난(河南) 성 정저우(鄭州) 황하 유역에 세워진 염제(신농)와 황제(黃帝)의 거대 동상이 대표적이다.
‘삼국지강의’와 ‘품인록’으로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중톈(易中天) 전 샤먼대 교수(66)가 이를 부인하는 책을 펴냈다. 이 전 교수는 중국통사를 다룬 36권짜리 ‘이중톈중국사’(사진)를 다루겠다며 올해 5월부터 분기별로 두 권의 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중 1권에 해당하는 선조(先朝)편이 최근 국내에도 번역됐다.
이중톈은 삼황(복희, 여와, 염제)과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시대를 다룬 이 책에서 요와 순을 제외하곤 모두 허구적 인물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사시대부터 문명시대까지가 원시공동체→씨족→부락→부락연맹→국가의 다섯 단계에 걸쳐 발전했다며 삼황오제를 국가 이전 단계의 기억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풀어냈다. 인류 공통의 여신으로서 이브가 모계 중심인 원시공동체를 대표한다면 여와와 복희는 그 권력이 부계 중심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서 씨족, 염제와 황제는 부락, 요와 순은 부락연맹을 대표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 문명의 시원이 남성인 복희가 아니라 여성인 여와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와의 상징물은 본디 다산의 상징인 개구리였는데 남성우위시대가 되면서 음습한 뱀으로 뒤바뀌었다고도 했다. 또 염제는 서쪽, 치우는 동쪽에서 이주해온 부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중국 본토 부족을 대표하는 황제가 이들을 통합한 뒤 치우로 대표되는 동이세력의 토템이었던 용을 통합적 토템으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공자에 의해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묘사된 요순시대를 대표하는 요와 순은 왕이 아니라 여러 부족이 결합한 부족연맹의 최고경영자(CEO)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으며 여러 역사기록을 볼 때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권력을 물려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요가 CEO일 때 순은 최고운영책임자(COO)였고, 순이 CEO가 되자 우가 COO가 됐는데 우의 아들인 계가 세습제를 실시하면서 비로소 하나라가 고대국가로 출현하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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