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2시경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이의상 석장(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이 손을 들자 월주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과 박성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이한수 익산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광목천을 당겼다. 탑 기둥 받침돌인 1.2t의 심초석(心礎石)이 서서히 움직여 탑 터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1915년 일제가 콘크리트로 땜질한 지 약 100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흐린 날씨에도 백제 무왕(600∼641)이 창건한 삼국시대 최대 사찰 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서탑(西塔)에 해당하는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터만 남은 채 보수공사 가건물이 들어섰다. 주위엔 탑을 해체하고 나온 돌 부재 2500여 개(총 중량 1800t)가 끝도 없었다. 최종덕 문화재청 정책국장은 “해체 전 높이 14.6m, 너비 12.5m의 규모였다”며 “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 최대 석탑의 위용을 실감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심초석을 놓는 정초식(定礎式)은 1999년 해체 보수가 결정된 지 14년 만에 닻을 올린 복원의 첫발이었다. 긴급 보수가 이뤄진 일제강점기 이후 미륵사지 석탑은 몸체 절반을 콘크리트로 발라 다소 흉물스러웠다. 무너지기 직전인 탑을 당시로서는 최신이던 시멘트 공법으로 형태만 잡아놓은 것. 하지만 1998년 안전검사에서 붕괴 우려 판정을 받고 대수술에 들어갔다.
2001년 10월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체는 10년 넘게 걸리는 대공사였다. 오랜 세월 석탑과 눌어붙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다. 문화재청은 일일이 정으로 쪼아서 떼어내는 수작업을 선택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의 김영철 사무관은 “탑 부재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다시 쌓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단 계단과 2층 옥개석(屋蓋石·석탑 지붕돌) 정도만 새로 만들고 나머지는 해체 직전 6층 무너진 형태로 돌아간다. 관건은 불완전한 탑을 유지하는 접착 소재였다. 연구 끝에 치아 시술 재료로도 쓰는 티타늄 합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콘크리트보다 접합 강도가 높고 조형미도 살리려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건립 당시 9층으로 추정되는 탑을 6층으로 복원하는 이유는 뭘까. 탑 전체의 정확한 형태를 알 근거가 없는 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2015년 등재를 기대하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핵심인데 과도한 복원은 치명적 감점 요소가 될 수 있다.
각계각층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제 막 초석을 놓은 석탑은 이르면 2016년 8월 말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이날 인근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이 개막했다. 2009년 1월 해체 도중 발견된 사리장엄(舍利莊嚴) 일체를 내년 3월 30일까지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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