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힐링투어]홋카이도 겨울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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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향연 찬란한 오타루 운하서 ‘지상 최고의 성탄절’을…

이 겨울밤 오타루 운하가 밤하늘의 은하수로 변했다. 오타루 시가 매년 크리스마스 직전(올해는 12월 21깶23일) 펼치는 ’후유모노가타리’ 이벤트인데 태양전지로 점등된 지름 8.5cm의 유리공 5000개를 운하에 띄운 장면이다. 아마노가와 프로젝트(天の川プロジェクト) 제공
이 겨울밤 오타루 운하가 밤하늘의 은하수로 변했다. 오타루 시가 매년 크리스마스 직전(올해는 12월 21깶23일) 펼치는 ’후유모노가타리’ 이벤트인데 태양전지로 점등된 지름 8.5cm의 유리공 5000개를 운하에 띄운 장면이다. 아마노가와 프로젝트(天の川プロジェクト) 제공
《 세상의 여행자는 두 부류다. 이 겨울 따뜻한 남쪽을 찾는 실리파, 굳이 북풍한설의 북방을 찾는 순리파. 나는 어느 쪽일까. 단언컨대 후자다. 이유는 분명하다. ‘겨울은 겨울답게.’ ‘자연주의’라고나 할지.

나 같은 겨울 나그네가 꿈꾸는 북방여행 1번지로는 일본 최북단 섬 홋카이도만 한 곳도 없을 듯싶다. 온통 눈 덮인 새하얀 대지, 초롱초롱한 별로 수놓인 밤하늘, 하염없이 눈만 흩날리는 잿빛 무채(無彩)의 하늘, 빨간 대게의 길고 통통한 다리, 입술 간질이는 삿포로맥주의 크림처럼 조밀하고 부드러운 거품, 거기에 ‘시로이 고이비토’(白い戀人·삿포로 명품 화이트초콜릿)의 달콤함…. 삿포로 유흥가 스스키노의 현란한 야경도, 유빙에 덮여 북극을 방불케 하는 아바시리와 몬베쓰의 얼음바다, 그 유빙에서 겨울을 나는 허기진 독수리, 아스피린 분말 같은 파우더 스노를 풀풀 날리며 다운힐 하는 니세코에서의 스킹도 모두 내가 그리워하는 홋카이도의 겨울, 그것이다. 》

겨울에 화창한 날씨는 어째 좀…. 한여름이라면 몰라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지 않을까. 세상 만물이 침잠에 든 만큼 거기 맞게 하늘은 잿빛, 눈도 펑펑 내리고, 추위에 을씨년스러움까지…. 그래서 앙상한 겨울 나목엔 눈꽃도 피고 색체 상실로 볼품을 잃은 자연도 그 옹색함을 감추고. 그러면서도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그런데 이런 서정적인 겨울 풍경은 한국의 그것과 약간 다르다. 그게 내가 이 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이유다. 홋카이도의 겨울이 딱 그렇다. 눈은 늘 하염없이 그리고 소리 없이 내리고 그 하늘은 잿빛 외엔 색깔을 가져 본 적 없었던 듯 늘 찌푸려 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눈 덮인 하얀 평원과 어울려 무채의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거기선 소음마저 침묵한 듯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긴 겨울밤. 시인 김광균은 눈 나리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처럼 설레고 사랑스럽고 안타깝고 행복하고 조바심 나는 그 소리. 나도 그걸 들은 적이 있는 듯하다. 홋카이도에서의 첫 겨울, 눈 내리던 밤. 존 케이지(백남준과 절친했던 미국의 전위음악가)의 퍼포먼스 ‘4분 33초’(4분 33초간 피아노 앞에서 연주도 하지 않고 그 정적을 듣게 한 연주회)처럼 내겐 눈 나리는 모습이 소리로도 다가왔다. 그런 홋카이도의 겨울을 내가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을까.

하코다테행 설국열차에 올라…

북극해를 연상시키듯 온통 유빙으로 뒤덮인 몬베쓰 앞바다를 쇄빙선이 얼음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북극해를 연상시키듯 온통 유빙으로 뒤덮인 몬베쓰 앞바다를 쇄빙선이 얼음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오전 10시 50분. 삿포로 역에서 슈퍼호쿠토(北斗) 열차가 출발했다. 홋카이도 서편의 항구도시 하코다테를 향해서다.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2시 2분. 차창 밖 하늘은 잿빛이었고 거기선 연신 눈발이 흩날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이뿐. 그러니 심심도 할 터.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다. 책도 읽고 맥주도 마시고 에키벤(철도도시락)도 먹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바깥 풍경은 영화 ‘설국열차’의 설정 배경과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살아 움직이는 거라고는 이 열차와 승객인 나뿐이라는 당시 생각까지도.

하코다테는 일본의 최초 개항(1858년)지 세 곳 중 하나다. 나머지 둘이 혼슈의 항구다 보니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홋카이도에서 이곳이 번성을 거듭할 수 있었던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데 1934년 대화재가 일어났고 그때 시가의 3분 1이 소실됐다. 그리고 그 빈 땅은 미국식 도시계획의 도입에 따라 바둑판식으로 나뉘어 개발됐다. 하코다테가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 모습을 갖춘 건 그 덕분. 그 뒤로 그건 다시 이 하코다테를 야경 명소로 끌어갔다. 로프웨이로 오르는 해발 835m 산정에서 감상하는 하코다테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19세기 번창했던 항구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보존돼 묘한 정취를 풍긴다. 그 핵심은 빨간 벽돌로 지은 부두창고인데 지금 거기엔 각종 숍과 레스토랑이 가득하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하치만자카) 위는 당시 최고의 거주지. 당시 건축한 러시아정교회와 서양 건축물이 아직도 건재하다. 그런데 여기엔 러시아, 거기서도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극동국립대 분교가 있다. 북위 42∼45도의 홋카이도는 블라디보스토크(북위 43.7도)와 가깝다. 그래서 19세기부터 교류가 많았다. 그런데 그건 지금도 현재진행형. 하코다테는 물론이고 삿포로와 오타루 등지에서 러시아 여행자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큼직한 모피 털모자를 쓴 러시아 여인을 통해 이곳이 북방의 섬임을 다시 한 번 깨친다.

삿포로, 그 설상(雪像)의 겨울도시

위쪽부터 니세코의 힐턴빌리지 숲가에 있는 로텐부로, 올 2월 삿포로 유키마쓰리에 출품된 눈조각 건축물, 눈덩이에 촛불을 밝히는 오타루의 겨울 축제.
위쪽부터 니세코의 힐턴빌리지 숲가에 있는 로텐부로, 올 2월 삿포로 유키마쓰리에 출품된 눈조각 건축물, 눈덩이에 촛불을 밝히는 오타루의 겨울 축제.
이튿날 기차로 돌아온 삿포로. 이 도시 역시 미국식 도시계획으로 바둑판처럼 반듯하다. 그 도시를 나누는 것은 오도리 공원(길이 1.5km, 폭 65∼105m). 그런데 이 공원이 지금 행사 준비로 부산하다. 매년 이맘때(올해는 11월 22일∼12월 25일) 펼치는 ‘삿포로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이다. 40만 개 전구로 장식하고 독일 뮌헨 시를 본뜬 ‘크리스마스 마켓’(29일∼12월 24일)도 연다. 눈과 잿빛 하늘, 추위로 점철된 홋카이도에서 긴 겨울을 나는 시민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고안한 행사로 1981년 시작됐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면 겨울도 그 정점에서 내려온다. 그즈음 삿포로 시내는 이제껏 내린 눈으로 도시가 파묻힐 정도. 그래서 2월 초면 이 눈을 이 오도리 공원에 퍼와 설상(雪像)을 만든다. 그게 홋카이도를 전 세계적인 겨울 여행지로 부상시킨 눈축제 ‘삿포로 유키마쓰리’다. 크고 작은 설상 수백 개가 공원을 메우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이걸 보러 여길 찾는다. 축제란 이래서 좋다. 하마터면 장애물로 취급될 눈을 지구촌의 어트랙션으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눈과 추위에 움츠러든 이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겨울을 즐기도록 해 주니까. 내년 유키마쓰리(66회)는 2월 5∼11일.

홋카이도 겨울여행을 계획했다면 바로 이때, 삿포로 유키마쓰리가 열리는 시기에 찾아야 한다. 왜냐면 이와 비슷한 축제가 바로 이때 홋카이도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열리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멀지 않은 시코쓰 호수에선 눈 조각이 아닌 얼음 조각을 전시하는 축제를 연다. 또 하나의 국제공항이 있는 아사히카와에선 설상을 전시하는 유키마쓰리를 도키와 공원에서 연다. 부근 온천마을 소운교도 이맘때쯤 소규모지만 얼음축제를 매년 연다.

아바시리의 얼음바다를 헤치며

그리고 이맘때만 즐길 수 있는 기막힌 체험이 홋카이도 동편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쇄빙선에 올라 북극처럼 변한 얼음바다를 헤치는 것. 쇄빙선은 아바시리와 몬베쓰 두 항구에서 출발한다. 유빙이란 바다에 떠다니는 얼음이다. 이 얼음은 홋카이도 북쪽 오호츠크 해에서 차가운 기단에 의해 형성돼 조류를 타고 이맘때쯤 여기로 흘러온다. 그 얼음은 오호츠크 해로 유입되는 아무르 강(중-러 국경을 이루는 강으로 중국에선 헤이룽(黑龍) 강으로 불린다)의 민물. 쇄빙선이 얼음바다를 깨면서 나아가면 물길 수면으로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얼음 위에서 기다리던 굶주렸던 독수리가 낚아챈다. 쇄빙선 투어는 얼음바다를 가르는 배를 타는 것 외에 이런 대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인기다.

눈과 유리, 그리고 운하-오타루

홋카이도 여행길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삿포로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의 오타루다. 오타루가 한국인 여행자에게 특별한 곳이 된 건 ‘러브레터’라는 영화 덕분이다. ‘오겐키데스카(건강하신가요)’라는 대사가 유행하면서 여주인공의 집이 있는 이 오타루 역시 덩달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언덕 위 동네의 그 집은 사라졌다.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것. 그럼에도 오타루를 찾는 발길은 줄어들지 않는다. 너무도 많은 매력이 이 도시에 철철 넘쳐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한겨울 오타루의 숨겨진 매력을 너무도 모른다. 겨울 여행지로 이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삿포로에 가린 측면도 있고.

그건 오타루의 상징과도 같은 운하의 수면을 무대로 삼아 펼치는 겨울밤 불빛 향연이다. 오타루라는 항구도시를 이해하려면 20세기 초 홋카이도 개척기에 모든 물류가 여기로 상륙했고 그 대금 결제가 여기 설치한 은행 지점에서 이뤄진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운하는 기중기가 없던 당시 배에서 물건을 부리기 위한 ‘도로’, 오타루를 고풍스러운 유럽의 도시처럼 보이게 하는 근대 건축물은 당시 은행 건물이다. 운하는 빨간 벽돌로 지은 창고를 끼고 있는데 그 창고 역시 하코다테처럼 숍과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운하 변 산책로는 매일 밤 가스등으로 밝힌다.

크리스마스 즈음(12월 21∼23일) 이 운하는 수면이 5000개의 작은 전등으로 장식된다. 운하를 밤하늘 은하수로 변신시키는 ‘오타루 후유모노가타리(冬物語)’다. 전등은 태양전지로 불을 밝히는 지름 8.5cm의 투명 유리공(전구). ‘이노리 별(流星)’이라고 부르는 이걸 수면에 띄우고 소원을 빈다. 2월 삿포로 유키마쓰리 시즌엔 더 큰 유리공을 띄운다. ‘유키아카리노미치’라는 행사다. 이즈음 오타루 시내는 온통 눈에 덮이고 골목엔 버킷(bucket) 모습의 눈 더미를 줄줄이 세우고 구멍을 판 뒤 그 안에 촛불을 밝힌다. 겨울 오타루의 정취는 바로 이런 운하와 골목길을 걷는 동안 더더욱 짙게 다가온다.

■Travel Info

◇홋카이도

▽항공편: 인천∼삿포로(대한항공 매일 운항), 인천∼아사히카와(아시아나항공 부정기 운항)는 2월에 주 2회(수 토요일) ▽현지 정보 △홋카이도: www.visit-hokkaido.jp(한국어) www.welcome.city.sapporo.jp www.sapporo-christmas.com www.snowfest.com www.white-illumination.jp △오타루: www.city.otaru.hokkaido.jp www.otaru.gr.jp(관광연맹·한국어) www.yeah-otaru.com
(식당 정보)

◇일본정부관광국

△홈페이지: www.welcometojapan.or.kr(한국어)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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