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온 반가운 문인 두 사람이 있다. 첫 시집 이후 2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해가 지면 울고 싶다’(기파랑)를 펴낸 시인 문형렬(58)과 절필 10년 만에 신작 소설집 ‘혀끝의 남자’(문학과지성사) 로 돌아온 소설가 백민석(43)이다. 신작 출간을 축하하듯 서설이 흩날린 27일 두 사람을 잇달아 만났다. 》
“그간 시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어요. 모아서 엮을 생각은 못 하고 쓰는 족족 지인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날려주다 보니, 두 번째 시집까지 20년 넘게 걸렸네요.”
소설가 겸 시인인 문형렬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시 부문)에 당선돼 시집 ‘꿈에 보는 폭설’(청하)을 냈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자전거’(문학과지성사), ‘어느 이등병의 편지’(다온북스) 같은 소설로 더 익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불교방송과 영남일보 기자로 일하며 온전히 시작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신작 시집에는 시인이 스무 살 무렵에 썼던 시(‘일몰’)부터 가장 최근에 쓴 시(‘너무 오랜 입맞춤’)까지 모두 49편의 시가 실렸다. 전통적인 그리움의 정서와 눈물의 미학이 관통하는 시들이다.
“내가 너의 속을 알고/네가 내 속을 알아서/더러움과 아름다움,/그 말없는 하루의 길에 서서/해가 지면 끝없이 소리없이 울고 싶다”(‘해가 지면 울고 싶다’ 중)
“얼마나 그리우면/제 몸 갈라/혼자 서 있나//너를 바라보는/내 모습이/나무 같네”(‘나무의 사랑’ 중)
몇 년 전부터 문 시인에게 시집 출간을 권유했다는 김요일 시인은 “소월 이후 발표됐던 어떤 사랑시보다 애절하고, 곡진하고, 고통스럽다”고 평했다.
“실제로 소월의 시를 좋아합니다. 서재를 정리할 때도 다른 시집은 다 버려도 소월 시집은 도저히 못 버리겠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그리움이란 한 벌의 가시모피 옷이에요. 입으면 따뜻하지만 동시에 가시 때문에 아프죠.”
다음 시집은 언제쯤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쓰고 싶은 시에 대한 생각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단단한 시를 쓰고 싶어요. 헛된 긍정과 희망이 아닌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주는 시, 그런 시를 많이 쓰면 새 시집도 나올 날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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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요? 제 작품에 불만이 많았죠. 글은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갔고, 우울증에 걸리면서 ‘계속 글을 써야 하나’ 회의가 들었어요.”
1995년 ‘문학과사회’에 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로 등단한 소설가 백민석은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등 장·단편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모던하고 지적인 이야기꾼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그가 2003년 문단에서 돌연 잠적했다. 휴식과 재충전이 아닌 절필 목적의 잠적이었다.
“회사에 취직해 8, 9년쯤 일을 했습니다. 전문대(서울예대 문창과) 출신이라 직장인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려고 4년제 대학(방송통신대 영문과)을 다시 다녀 학위도 땄지요. 대학 리포트 쓰는 것 말고는 일절 글을 쓰지도 남의 작품을 읽지도 않았어요.”
작품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때 왜 절필했느냐”와 “왜 다시 돌아왔느냐”였다. 작가는 이번 책에 수록된 자전적 단편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절필 즈음 작가가 느꼈던 정서 마비 상태와 성마른 언행으로 인한 주변인과의 불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뒤 다시 찾아온 글쓰기의 욕망.
문단 복귀의 결심이 서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10년 만에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고 ‘다들 정말 열심히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나도 열심히 쓰자고 마음먹었지요. 요즘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소설을 쓰기 시작해 밥 먹고 산책하는 것 말고는 밤 12시까지 글만 씁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혀끝의 남자’까지 신작 단편 2편을 실었고, 과거 발표작 7편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처음부터 새로 다시 써서 수록했다. 절필을 결심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던 시절의 기억이 살아나 괴로웠지만 ‘내 글의 가장 소중한 독자인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글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내년 여름쯤 새 장편을 탈고하는 게 목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화장하지 않은 민낯 같은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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