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 인생길이/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이말란 할머니의 자작시 ‘내 인생길’ 중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인생을 몇 줄로 요약하기란 어렵다. 그는 1927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녀를 다녔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했다. 오빠와 두 언니는 광복 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부산고녀 재학 시절 한센병과 임신이란 불행이 한꺼번에 닥쳤다.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불러오는 배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곧 한센병이 몸을 덮쳤다. 동네 주민들은 산기슭 움막으로 내몰았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돌봐주던 어머니가 이듬해 숨지고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입양 보내야 했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은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라고 썼다. 할머니의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평생 차별 속에서 살며 입양 보낸 아들과 첫사랑을 그리워했다. 나중에 가족을 꾸렸지만 상처를 꺼내 보이지 못했다. 그저 “차라리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이라며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며 살았다.
간호사 출신인 저자는 문학과 의학을 융합한 ‘치유 시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2006년 7월 ‘시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2007년 2월까지 20여 차례 저자를 만나 시를 쓰며 자신의 억누르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아름다운 영혼과 화해한다. 책에는 2009년 6월 사망한 할머니의 구술사와 시 11편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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