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경남 양산 한방상황보쌈감자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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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일수록 단맛 나는 돼지뼈… 상황버섯 넣으니 누린내 싹

국내산 돼지 뼈와 시래기 콩나물 들깨 깻잎을 넣어 끓여 낸 감자탕. 돼지 뼈는 주인 김종활 씨가 단골 정육점에서 살점이 많이 붙은 것으로 특별 주문해 사오고, 시래기를 비롯해 반찬에 쓰는 채소류는 김 씨 부부가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양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국내산 돼지 뼈와 시래기 콩나물 들깨 깻잎을 넣어 끓여 낸 감자탕. 돼지 뼈는 주인 김종활 씨가 단골 정육점에서 살점이 많이 붙은 것으로 특별 주문해 사오고, 시래기를 비롯해 반찬에 쓰는 채소류는 김 씨 부부가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양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와 이리 박박 닦는교? 물로 확 뿌리 삐면 깨끗할 긴데.”

“편할라믄 뭐 하러 식당하노? 오늘 편하믄 내일은 불편한 기라.”

팔 길이보다 더 깊은 찜통을 수세미로 힘줘 닦던 김종활 씨(57)가 아내 이선옥 씨(56)의 ‘잔소리’를 딱 잘랐다. “초심이 흔들리면 안 되는 기라. 깨끗한 거 좋아하면서 와 그라노. 이렇게 깨끗하게 닦아야 감자탕이 제 맛을 내는 기라.”

23일 오후 4시 경남 양산시 북부동 한 골목길에 위치한 ‘한방상황보쌈감자탕’. 국내산 돼지 뼈와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감자탕을 만들어 내는 집이다. 부부는 주방 뒤편 수돗가에서 저녁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가게가 붐비는 통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돼지 뼈를 삶은 찜통을 닦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재개한다는 안내문을 내걸고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오는 손님 다 받으믄 음식에 정성이 떨어지는 기라. 마누라 나 두 사람이 우째 다 감당하노?”

원래 이곳은 채널A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선정한 ‘준착한식당’이었다. 검증단이 착한식당으로 선정하려 했으나 아내 선옥 씨가 양념장에 약간의 인공 조미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전문가들마저 속을 정도로 미량이었지만 선옥 씨는 자신을 속일 순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인공 조미료 대신 천연 조미료를 쓰는 사실이 확인돼 ‘착한식당’으로 격상됐다.
금실 좋은 부부, 감자탕집 낸 사연

부부는 고향인 경남 거창의 아래윗집에서 ‘오빠’ ‘동생’ 하는 사이였다. 김 씨는 상고를 졸업한 후 인천에 있는 작은 손톱깎이 공장에서 금형기술자로 일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양산에 있는 비슷한 공장에 재취업한 뒤 26세에 이 씨와 결혼했다. 이후 직업을 세 번 바꿨지만 모두 자영업이어서 늘 아내와 함께 일했다.

부부는 취향이 비슷했다. 산과 들을 좋아해 봄이면 함께 나물 캐고 여름에는 양산천에서 꺽지를 잡았다. 가을에는 버섯을 따러 다녔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40대 후반까지 15년간 공구상을 운영하며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쓰나미’ 외환위기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1년에 부도를 13번 맞기도 했으니 말 다 했제. 거의 다 까먹었어. 근데 마누라는 좌절하지 않고 노래방 해보자고 해서 또 그 일을 했어. 8년 동안 하며 그럭저럭 괜찮았지.”

노래방은 오후에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부부는 오전 시간 대부분을 산과 들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지금 식당에서 10km쯤 떨어진 곳에 2400m² 규모의 텃밭을 사게 됐다. 농작물을 직접 재배해 먹고 싶었다.

나이가 쉰을 넘어가자 노래방 일이 쉽지 않았다. 영업은 새벽에 끝나고, 취객과 아가씨 찾는 손님을 상대하기도 버거웠다. 그때 아내가 제안했다. “여보, 우리 농장에서 키운 채소, 그리고 당신 후배가 재배하는 상황버섯을 이용해서 식당 한번 해볼까?”

제31호 착한식당 ‘한방상황보쌈감자탕’은 2009년 12월 10일 그렇게 시작됐다. 12월 10일은 김 씨의 생일이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국내산 돼지 뼈인데도 살점이 많은 비결

한방상황보쌈감자탕집을 운영하는 김종활 씨와 부인 이선옥 씨, 외아들 용수 씨(왼쪽부터).
한방상황보쌈감자탕집을 운영하는 김종활 씨와 부인 이선옥 씨, 외아들 용수 씨(왼쪽부터).
국내 감자탕집은 체인점이 많고 대부분 본사에서 양념소스와 재료를 공급받는다. 돼지 뼈는 살점이 많은 미국산 등뼈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또 감자탕 맛이 나는 양념분말수프를 사용하는 곳도 많다.

원래 국내산 돼지 뼈에는 살점이 많지 않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식습관 때문에 정밀하게 발골(拔骨)해 살점이 남지 않는다. 반면 미국산은 삼겹살을 먹지 않아 등뼈에 살점이 많다. 그렇다면 이 집의 국내산 돼지 뼈엔 왜 이리 살점이 많은 걸까. 김 씨는 단골 정육업자에게 웃돈을 건네고 등뼈에 살을 많이 남겨 달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원래 감자탕은 ‘감저(甘저)탕’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하대. 달 감(甘)에 돼지 저(저)를 쓰는 기라. 돼지 뼈를 오래 삶으면 뼛속에서 단맛이 나거덩. 좋은 돼지 뼈에 집에서 직접 만든 시래기를 쓰니 그만큼 맛있는 기라.”

이 집 주요 메뉴는 묵은지감자탕, 시래기감자탕, 상황돼지보쌈 3가지다. 모든 요리는 상황버섯을 넣어 누린내를 없앤다. 감자탕에는 돼지 뼈와 콩나물, 들깨, 깻잎이 들어간다. 소금은 쓴맛을 없애기 위해 직접 구워 쓴다.

반찬은 단출한 편이다. 깍두기, 버섯무침, 김치, 참나물, 깻잎, 콩이다. 모두 김 씨가 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이다. 공깃밥도 그릇에 미리 담아 온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주문 때마다 퍼서 식탁에 올린다.

감자탕은 끓을수록 담백하고 깊은 맛이 배어 나왔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아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착한 감자탕의 비결은 ‘핏물 25, 낮은 불뜸 20’

부부의 일과는 오전 8시 반에 시작된다. 먼저 돼지 뼈가 도착하면 핏물부터 빼야 한다. 근육조직이 단단하면 물의 온도를 약간 높이고 부드러우면 그만큼 낮춰 피 빠짐을 원활하게 한다. 이어 1차로 살짝 삶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2차로 메인 약재인 상황버섯과 엄나무, 생강, 월계수 잎, 통후추, 매실액을 비롯해 18가지 재료를 넣고 12시간 동안 삶는다. 다 삶고 나면 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 숙성시킨다. 약재가 뼛속 깊게 배어들게 하는 과정이다.

뼈를 삶고 육수를 만드는 장소에는 김 씨 만의 시간 레시피가 걸려 있다. ‘핏물 25, 딸랑 전 23, 딸랑 후 10, 낮은 불뜸 20(분)’. 휴대전화 알람을 이용해 시간을 잰다고 했다. ‘딸랑 전 23, 딸랑 후 10’은 무슨 뜻일까? 그건 영업 비밀이란다.

좋은 재료와 정성, 기다림이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이 감자탕 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지만 더 바쁘다고 한다. 농장에서 채소를 가꿔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31일 ‘준착한식당’으로 선정된 후 조용했던 식당 주변도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식당가 좁은 골목길엔 전국에서 몰려온 차량으로 빼곡히 찼다. ‘분점을 내줄 수 없느냐’ ‘식당하다 망한 우리 모녀 좀 살려 달라’는 부탁에서부터 ‘일을 배우고 싶다’는 편지까지 전국에서 이런저런 문의와 의뢰가 답지했다.

테이블이 12개여서 많은 손님을 받지는 못한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들은 이 집 문이 닫혀 있으면 대신 주변 식당을 찾는다. 골목길 상권이 함께 살아난 것이다. 손님이 많아져 주말에는 동네 아줌마 2명을 고용했다. 정수기 회사에 다니는 외아들 용수 씨(32)도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했다.

오후 5시 영업을 재개하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부부, 감자탕을 놓고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 80대 노부부, 친목 모임을 갖는 40대…. 한 달 전 결혼했다는 강대웅 씨(31·경남 창원)는 “아내와 채널A에 소개된 착한식당들을 모두 찾아다니고 있다”며 “이 집 감자탕은 짜지 않고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김 씨는 ‘개업 이래 가장 안타까웠던 일’을 들려줬다.

“착한 식당으로 방영된 지 한 달쯤 지났을 기라. 그러니까 지난해 10월쯤이제. 잠시 가게를 비운 사이 서울에서 80대 노인 두 분이 고속철도(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다시 전철을 타고 식당을 찾았다는 기라. 근데 재료가 떨어져 발길을 돌렸다 아이가. 동아일보에서 그분들 찾거나 연락되믄 꼭 한 번 정성껏 모시고 싶다고 전해 주이소.”

양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한식·양식·중식조리기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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