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꾼 집시들이 기거하는 어두운 산속은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캠핑카와 텐트로 채워졌고, 춤추고 노는 허름한 주막은 도시적인 바로 바뀌었다. 고양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카르멘’(11월 28일∼12월 1일, 고양아람누리)은 현대적인 무대와 연출로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안겨줬다.
막이 오르고 원작의 19세기 배경 대신 현대의 스페인을 연상케 하는 왁자지껄한 광장에서 극은 경쾌하게 시작한다. 1막에서 도시경비대 군인들이 껄렁껄렁하게 배회하고, 흰색 교복을 입은 어린이와 붉은 작업복 차림의 담배공장 여공들이 광장을 오간다. 2막의 바에서 카르멘(추희명)과 집시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투우사 에스카미요(박경종)가 세그웨이를 타고 등장한다.
4막 역시 현대적인 분위기로 연출됐다. 에스카미요는 특급 스타처럼 관중의 환호 속에 카르멘과 함께 레드카펫을 걷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을 붙잡으려는 돈 호세(나승서)와 이를 뿌리치는 카르멘을 두고, 뒤에서 앞으로 무대를 좁혀오는 벽은 비극에 놓인 남녀를 클로즈업하는 듯했다. 영상도 적절하게 사용해 극과 어우러졌다. 곳곳에 배치한 눈길 끄는 볼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지휘자 이병욱이 이끈 TIMF 앙상블은 빠른 템포로 음악을 탄력 있게 끌고 나갔다. 이병욱은 노련하게 강약을 조절하며 카르멘의 활력과 색채감을 펼쳐보였다.
주역들은 성악적인 면에서는 무난했지만 연기가 아쉬웠다. 카르멘은 노래에서 관록과 여유가 느껴졌지만 춤은 몇 가지 동작만을 반복했고 팜파탈의 전형적인 표현에만 그쳤다. 에스카미요에게서도 매력이 전해지지 않았다. 비슷한 표정과 음색으로 감정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다. 3막에서 호세와 에스카미요가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특히 어설펐다.
이 오페라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이름 없는 단역들이었다. 양정웅 연출은 극단 여행자의 배우 20여 명을 투입해 무대 어딘가에서 이들이 쉴 새 없이 연기를 하게 했다. 멀뚱멀뚱 서 있는 단역이 없었다. 이들의 활약은 우리 오페라가 성악 외에 다른 측면을 상대적으로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를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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