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복고풍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나 드라마 속 패션과 제품들도 관심과 인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모 케이블TV 채널의 드라마는 당시의 소품들과 패션들을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30, 40대들에게는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과거를 친근하게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드라마는 새로운 것만이 핫(hot)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도 새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레트로(retro)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retrospect’의 준말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는 ‘pre’의 반대 의미로 사용되다가 복고풍이 음악과 패션, 디자인 등에서 빈번하게 등장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공식 용어’가 됐다. 패션에서는 이런 레트로 스타일의 형태를 ‘레트로룩’이라고 한다. 레트로룩은 1971년 이브 생로랑이 봄·여름 컬렉션에서 1940년대 패션을 재현한 이후 패션의 한 장르로 등장하게 됐다.
레트로룩은 각 시대를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지나간 시대적 배경에 현시대의 감각과 대중적 취향을 담아 다양하고 새롭게 과거를 연출한다. 과거의 것을 차용하지만 그대로가 아니라 현재의 감성 측면에서 동감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과거의 것이지만 결코 구시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친숙하지만 감각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새로움을 어필한다.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세련된 안목과 감각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패션 브랜드들의 컬렉션에서 레트로 무드는 매 시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최근 컬렉션에서의 레트로는 특정 시점의 역사나 특정한 지역의 요소들만을 모티브로 하기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임의로 절충 및 융합해 표현한다. 때로는 전혀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는 시대나 지역의 융합을 통해 디자이너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타낸다.
2014 봄·여름 컬렉션에서 지방시는 일본과 아프리카를 함께 조명했으며 알렉산더 매퀸도 아마존 부족과 유럽의 켈트족, 몬드리안의 지오매트릭 그래픽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 언제 또는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과거를 표현했다.
예전에는 레트로의 표현이 한 시대나 시점에 대한 영감을 표현했다면 지금의 디자이너들은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영감의 원천을 모두 하나의 룩(look)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들은 굳이 그 원천에 대해 구구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으며, 그런 설명에 연연할 소비자들도 없다. 즉, 과거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현재라는 시간적 상황을 작가의 주관대로 표현하고,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이젠 과거도 새롭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현대문명 속 시간의 속도감을 잠시 잡아둘 수 있는 장치, 그것이 새롭고 세련되게 표현되는 레트로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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