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한 동물보호단체(Nonhuman Rights Project)는 ‘토미’란 이름의 침팬지에게 신체적 자유의 기본권을 허용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침팬지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현재 개인이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는 토미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보내 달라는 요구다. 이 단체는 소송 결과에 따라 고릴라와 고래, 돌고래를 대신해 소송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단체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시스템에 반기를 들었다면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Animism’전은 좀 더 포괄적으로 사람만이 영혼과 생명을 갖고 있다는 확신에 질문을 제기한다. 애니미즘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영혼과 주체적 성격을 부여하는 믿음을 말한다. 독일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 씨(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수석큐레이터)는 합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기를 통과하면서 원시사회의 미개한 신앙처럼 배척된 세계관을 미술관에 불러내 예술과 지식 담론을 잘 버무린 전시를 꾸몄다.
전시는 2010년 벨기에에서 출발해 베른 베를린 뉴욕을 거친 국제순회전으로 개최 도시마다 현지 리서치 결과를 곁들여 왔다. 서울에선 김현진 학예실장이 협력해 국내 작가 8명의 작품과 동아일보 아카이브에서 찾은 기사 자료를 추가해 동시대적 이슈와 한국을 잇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1920년대 렌 라이의 실험영화를 비롯해 칸디다 회퍼, 하룬 파로키, 박찬경, 김상돈, 이동엽 등 국내외 작가 37개 팀 작업 50여 점에 사료와 연구 자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전시다. 제대로 음미하려면 시각을 넘어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내년 3월 2일까지. 2000∼3000원. 02-2020-2050
○ 생물과 생물 아닌 것의 경계
1층 전시실엔 독일 작가 회퍼가 파리 베를린 등지의 민속박물관 내부를 촬영한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다. 거대한 장비에 실험복을 입은 연구원들은 살아 있는 것은 늘 변화하고 소멸하기에 이를 고정된 상태로 보존하는 데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길초실 씨가 무당들의 숨을 봉인한 유리병, 체로키 인디언 출신 미국 작가 지미 더햄이 심장 감자 등과 닮은 자연석을 진열장에 모아 놓은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작품과 더불어 월트디즈니의 초기 애니메이션, 성경 속 이야기에 인간 대신 동물이 등장한 에티오피아 무명작가의 삽화도 보인다.
근대적 이성주의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숨쉬고 있는 애니미즘을 둘러싼 현상, 근현대 담론, 이에 새롭게 접근한 예술 작품을 선보인 자리다. 프랑케 씨에 따르면 애니미즘은 단순히 생명 없는 물체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거의 없는 사고방식이자 전 우주가 살아 있으며 유사(類似) 주체로 인식하는 세계관이다. 그는 “애니미즘을 화두로 주체와 객체, 나와 타자의 경계를 만든 서구 근대성과 식민주의 사고방식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예술과 연구 사이 경계
올해 베니스비엔날레가 그랬듯이 ‘애니미즘’전은 연구를 기반으로 구성한 리서치 전시다. 개별 작품보다 예술과 사료를 뒤섞어 담론을 만드는 큐레이터의 접근 방법을 주목하는 이유다. 인문적 교양과 세련된 전시 연출이 어우러진 전시는 다양한 문화권의 현장과 더불어 자연과학 철학 심리학 등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세계 최초로 자연에 헌법적 권리를 부여한 에콰도르의 토착민 운동을 소개하는가 하면 정신과 물질 등 이원론적 세계관을 표현한 데카르트 저서의 삽화, 진공 속에서 새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17세기 과학실험을 담은 그림…. 찬찬히 봐야 할 자료가 수두룩하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실천적 생태철학의 의미를 추적한 이탈리아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와 아티스트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의 영상처럼 예술과 인문학의 협업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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