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과 영원 잇는 다리가 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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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 스기모토 사진전

전기봉을 이용한 실험에서 탄생한 ‘번개 치는 들판’과 함께한 히로시 스기모토 씨. 리움미술관 제공
전기봉을 이용한 실험에서 탄생한 ‘번개 치는 들판’과 함께한 히로시 스기모토 씨. 리움미술관 제공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히로시 스기모토-사유하는 사진’전은 연말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한다. 수묵화 같은 흑백 사진들이 인간이란 존재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긴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우며 일상의 쉼표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19세기식 대형 카메라와 전통적 인화 방식을 고집하는 사진가 히로시 스기모토 씨(65)의 작품은 장인적 기술, 간결한 형식, 철학적 깊이의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장 노출 기법으로 한 편의 영화를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극장’을 비롯해 ‘디오라마’ ‘바다풍경’ ‘번개 치는 들판’ 연작까지 1970년대 후반 이후 대표작들과 조각 영상 등 49점을 선보였다.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존재의 시원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명성이 높다. 개막에 맞춰 내한한 작가는 “사진 찍을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개념적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사진이란 도구로 구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의 궁극적 화두는 시간이다. “사진은 내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 같다. 사진을 통해 16세기로, 19세기 과학이 실천된 현장으로 역사의 여러 순간을 오갈 수 있다.”

제주에서 찍은 황해를 포함해 전 세계 바다를 촬영한 ‘바다풍경’은 지구에 인간이 나타나 사람이란 의식이 처음 생겼을 때 바라보았던 태초의 풍경,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풍경을 보여 준다. 16세기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 초상화를 토대로 19세기에 제작한 밀랍조각을 촬영한 사진은 시간성의 중첩과 더불어 회화 조각 사진의 장르가 겹쳐진다. 일본 교토의 절에서 촬영한 불상들이 빠르게 증식하는 3채널 영상에 사진, 조각이 어우러진 ‘가속하는 부처’는 소멸을 향해 치닫는 문명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년 3월 23일까지. 4000∼7000원. 02-2014-69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히로시 스기모토#사유하는 사진#흑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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