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 연출 “방자가 춘향이랑 눈맞는 세상이다, 케케묵은 캐릭터로는 어림없다, 장르적 매력을 내뿜어야 한다”
정준 작가 “헤어진 남친의 결혼식에 간 여주인공, 현실과 이상 사이 부대끼는 삶… 극단적으로 양분하고 싶다”
머릿속에 담아놓고 혼자 킥킥대던 이야기를 글로 엮어내면 따분하기 짝 없을 때가 적잖다. 초보 작가들의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충무아트홀이 올해 처음 마련한 창작뮤지컬 콘텐츠 발굴 프로그램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의 목표다. 18∼35세 신진 작가, 작사가, 작곡가를 선별해 쇼케이스 제작비 5000만 원과 무대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9월 공모를 시작해 최종 확정된 지원대상은 다섯 편. 작품별로 전담 프로듀서와 선배 멘토가 정해졌다. 정준 씨(33)의 로맨틱코미디 ‘X-Wedding’은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김종욱 찾기’로 유명한 장유정 연출(37) 손에 맡겨졌다. 올해 ‘날아라 박씨’로 호평을 받은 정 씨는 두 번째 뮤지컬로 30대 여주인공이 10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찾아가는 이야기를 썼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로 시작한 대화는 점점 멘토의 엄한 수업처럼 흘러갔다.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작가 본인의 이야긴가.
“거봐, 내가 다 이렇게 물어볼 거라고 했잖아! 자긴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딱 자기 얘기다.”(장)
“사랑을 믿는 20대의 또 다른 자아가 무대 위에 공존한다. 사람의 내면을 극단적으로 양분하고 싶었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랑에 대해서든 뭐든 누구나 상황마다 내면의 부대낌을 겪지 않나. 바라는 모습과 현실에서 대응하는 모습이 다를 때가 많다. 그 부대낌 사이에서 모두를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정)
―두 사람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 수업에서 동급생으로 처음 만났다. 매주 캐릭터를 하나씩 더해 가는 과제를 내야 했는데 단연 장 연출이 돋보였다. 나는 클래식음악을 공부하다가 작가의 꿈만 품고 있었다. 대학로 초연 중이던 장 연출의 데뷔작 ‘송산야화’를 찾아가서 보고 다음 수업 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정)
“처음에는 멘토 이거 안 하려 했다. 전화를 일부러 안 받았다. 목소리 들으면 마음 약해지니까. 그런데 문자가 계속 왔다. 입장 바꿔 생각하니 ‘아유 내가 뭐라고 거절하나’ 싶었다. 시작한 날부터 숙제를 산더미로 내줬다. 1시간 내내 문제점만 지적했다. 칭찬? 전혀. ‘그래도 죽지는 마’ 정도 위로만 했지.”(장)
―뭐가 제일 문제였나.
“자기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한예종에서 가르치면서 매학기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써보게 한다. 십중팔구 재미없다.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한다. 첫사랑, 가족의 죽음…. 엄청난 일이었는데 극화하면 보잘것없어 보이니까. 스토리텔링을 찾지 못하고 자기 안에 빠지기 때문이다.”(장)
―멘토 의견에 반발심이 들 때는 없나.
“대부분 동의한다.”(정)
“어딜 감히. 하하. 이번 프로그램은 20분 분량의 좋은 아이템을 60분 이상 길이의 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아이템은 발효된 빵 반죽 같다. 잘못 구우면 타버리거나 이상한 떡이 된다. 방자가 춘향이랑 눈도 맞는 세상에서 10년 전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 캐릭터가 먹힐까. 굉장히 코믹하거나 장르적 매력을 내지 못하면 어렵다.”(장)
―후배의 장점이 있다면….
“대사를 맛있게 쓴다. 공연은 이미지보다 대사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큰 구성만 잡아놓으면 문제없이 흘러갈 거다. 하지만 첫사랑 이야기는 모든 관객이 나름의 디테일을 갖고 있다. 디테일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결혼식에서 뭔가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장)
“조용한 순간에 볼펜을 떨어뜨리면….”(정)
“그게 뭐가 사건이야! 뭔가 중대한 변화를 일으켜야지!”(장)
―남자를 납치하는 건 어떨까.
“나쁘지 않겠네. 어쨌든 지금의 결혼식 아이디어가 결말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시작해 나머지 후반부 덩어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길이 멀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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