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군주로 유명한 조선의 정조(1752∼1800)는 의외로 지독한 골초였다. 그는 담배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소화를 돕고 불면증 해소에도 좋다며 평소 신하들에게 담배의 유익한 점을 역설하곤 했다. 그런데 정조가 개인적인 애연을 넘어 모든 백성에게 흡연을 권장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됐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규장각에서 가로 420cm, 세로 110cm에 이르는 ‘남령초(南靈草) 책문(策問)’ 원본을 발견했다. 남령초란 당시 담배를 부르던 별칭이고, 책문은 과거시험의 한 과목으로 왕이 정책 자문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정조는 규장각에 발탁한 젊은 문신(초계문신)을 대상으로도 책문을 내렸다. 남령초 책문은 1796년 11월 18일 정조가 어떻게 하면 모든 백성에게 담배를 피우게 할 것인지 대책을 제시하라고 낸 시험 문제다.
946자로 이뤄진 이 책문은 “온갖 식물 가운데 이롭게 쓰이고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으로 남령초보다 나은 것이 없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담배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잘못된 속설을 반박하고 담배의 효능을 알리면서 모든 백성이 담배를 피우면 좋겠다는 바람이 나타나 있다. 정조는 또 “천지는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해로움을 제거하고자 하여 안달이 날 지경이다. 이 풀이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담배를 예찬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비옥한 경작지가 점차 수익성 높은 담배밭으로 변하면서 식용작물의 경작지가 줄어드는 폐단 때문에 흡연을 놓고 찬반양론이 거셌다. 안 교수는 “많은 신하들이 아예 답안을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조의 흡연 권장책에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문신 이면승이 왕명으로 쓴 시문을 모아 쓴 ‘감은편’이라는 책에 ‘남령초 책문’ 전문과 그에 대한 답안이 실린 것을 발굴했다. 이면승은 답안에서 정조의 생각을 지지하면서, 담뱃대를 물면 사람의 입을 틀어막아 말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므로 이보다 나은 풀은 의서에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동서양 역사에서 금연령을 내린 통치자가 적지 않았지만 정조처럼 모든 백성을 흡연자로 만들고자 한 통치자는 없었다”며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담배를 재배해 수확한 담배를 신하들에게 하사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정조는 남령초 책문을 내기 4년 전인 1792년 9월 1일 한 편지에서는 창덕궁 후원에서 수확한 담배 맛이 강렬하여 명품 담배로 유명한 평안도의 삼등초(三登草) 못지않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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