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우리 일상에 스며든 日 전통공연 ‘가부키’ 용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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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뜬다 → 시간적 휴지 공간적 여백, 18번 → 가장 뛰어난 장기

일본의 전통공연 가부키(歌舞伎)는 현대 한국인에겐 정말 낯선 장르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 중엔 이 가부키에서 온 단어가 적지 않다.

영화나 방송 촬영 도중에 ‘마가 뜬다’는 말을 많이 쓴다. 대사와 대사 사이, 액션과 액션 사이에 틈이 길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의 어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가 낀다’는 표현과 혼용하기도 한다.

‘마가 낀다’의 마는 악마 마(魔)자로 ‘좋은 일 뒤엔 꼭 마가 낀다’는 식으로 쓰는 말이다. 반면 ‘마가 뜬다’의 마는 사이 간(間)자의 일본어 발음이다. 시간적 휴지나 공간적 여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무대표현 기교를 말한다.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면 ‘뜸’이 어울린다.

노(能)와 가부키의 매력 중 하나가 ‘마(間)의 미학’이라고 할 만큼 일본에선 이를 중시한다. 가부키 공연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배우가 아름다운 동작을 취한 채 한동안 조각상처럼 멈춰있는 ‘미에(見得)’도 그중의 하나다.

이는 전통 공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의 현대극 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을 보면 공연 도중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역시 ‘마의 미학’을 구현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선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데 반해 한국에선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문화적 변용이다.

요즘은 애창곡으로 대체된 ‘18번’이란 말도 주하치반(十八番)이란 가부키 용어에서 나왔다. 가부키 최고의 배우 중 하나였던 이치카와 단주로(市川단十郞) 집안 대대로 전승된 대표작 18편을 통칭하던 말이 ‘가장 뛰어난 장기’란 뜻을 거쳐 ‘가장 잘 부르는 노래’가 된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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