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의 무예 이야기]<끝>조선의 ‘한류 스타’ 마상재인(馬上才人)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조선통신사 기병, 馬上동작 자유자재… 日구경꾼 몰려들어

최형국 소장 제공
최형국 소장 제공
달리는 말 위에서 일어서거나 물구나무서는 일은 일반인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 유명 서커스 단원들이 말과 함께 펼치는 쇼 무대에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 게다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말과 호흡을 맞춰 다양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과 함께 최고의 무예를 펼쳤던 ‘마상재인(馬上才人)’이다. 필자가 마상재를 단순한 ‘쇼’가 아닌 ‘무예’라 언급한 이유는 이 기술이 기병을 위한 공식 무예훈련에 쓰였기 때문이다. 마상재인은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가 당시의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조선의 ‘아이돌 스타’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 얻어

문화 사절인 통신사는 임진왜란으로 급격히 악화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파견됐다. 서울에서 사절단을 모아 부산까지 이동해 바다를 건너 일본을 다녀오는 통신사의 여정은 짧게는 8개월, 길게는 2년이 넘게 걸렸다. 때론 풍랑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여행이기도 했다. 부산을 떠난 조선통신사는 쓰시마 섬을 거쳐 오사카를 지나 에도(도쿄)로 향했다.

통신사 일행에는 관리 등 조선인 약 500명이 참여했으며, 쓰시마 섬에서는 통신사 호위무사로 약 200명이 파견을 나갔다. 따라서 현지 길 안내와 짐꾼을 포함해 모두 1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이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이 만든 흙먼지가 하늘에 가득할 정도로 구경꾼이 몰려들었다고 기록에는 전해진다.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보여준 문화적 우수성은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조선통신사 일행 중 호위무관으로 경호를 책임졌던 마상재인은 뛰어난 기마 실력을 선보이며 당대의 ‘한류 스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당시 일본 최고의 중신인 관백(關伯)이 직접 통신사의 우두머리에게 다음 사행 때에도 반드시 마상재인과 동행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을 정도였다.

1748년 조선통신사와 함께 한 제술관(製述官) 박경행은 “전쟁터에서 총 칼 창이 들어오고 깃발이 휘날리며 북소리가 요란할 때 말에 몸을 숨긴 채 적진에 돌진해 적의 깃발을 빼앗거나 적군의 목을 베어올 수 있는 날랜 재주를 지닌 사람이 우리나라에 400, 500명은 된다”며 무예로서의 마상재의 본질을 일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마상재인들은 관백이 타는 말을 직접 조련해 주기도 했다. 통신사들이 귀국할 때에는 마상재를 선보인 조선의 명마를 달라고 졸라서 몇 마리를 선물로 주고 오기도 할 정도였다.

임금이 명한 기병 특수훈련

조선의 22대 국왕인 정조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당시로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불렸던 ‘장용영(壯勇營)’을 만들었다. 이들은 요즘의 특전사나 공수부대처럼 강인한 체력과 전투력을 갖추도록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장용영에서도 특히 전투력이 뛰어난 기병부대 ‘선기대(善騎隊)’에는 별도의 특수훈련을 추가했다. 바로 마상재였다. 정조는 장용영의 선봉대 역할을 맡은 군사들에게 마상재를 반드시 익히게 했다. 심지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던 장용영 내부 무예 시험에 정조가 직접 참여하면서까지 기병 전투력 강화에 신경을 썼다. 다른 부대에서도 기창,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등 전투에서 기병이 단병접전(短兵接戰·칼이나 창으로 적과 직접 맞부딪쳐 싸우는 전투)을 치를 수 있는 마상무예를 주로 훈련했다.

마상재를 두고 무예냐 아니냐하는 논란도 있다. 그 모습만 보면 무예이기보다는 곡예나 기예에 가깝다고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마상재를 익혀 보니 이 기술이 기병 무예 훈련으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었다. 정조가 단순히 말 위에서 아슬아슬한 자세를 잡는 곡예를 보고 싶어서 가장 뛰어난 장용영 군사들에게 마상재를 훈련하라고 명했겠는가. 필자는 지금도 말을 타고 활을 쏘거나 몸보다 큰 무기인 월도를 휘두르며 마상무예를 훈련하고 있다. 달리는 말에서 한번 멋지게 일어서 보면 무예의 근본인 담력은 물론이고 중심이동 기술까지 익힐 수 있다. 말 위에서도 중심 잡고 무기를 다루는데 하물며 땅 위에서 하는 건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 올 초부터 15회에 걸쳐 게재된 ‘최형국의 무예이야기’가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