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어린이극으로 우정 나누는 한국 ‘산너머 개똥아’ 원작연출 이윤택, 독일버전 ‘베를린 개똥이’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
‘산 너머 개똥아’의 이윤택 연출(오른쪽)과 ‘베를린 개똥이’의 알렉시스 부크 연출. 두 사람은 “연극에는 국적이 없다. 언어는 힌트일 뿐이다. 느낌, 이미지, 소리, 리듬, 몸의 움직임, 공간 구성을 통해 언어에 앞선 연극적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당신, 당장 한국으로 오시오!”
7년 전 독일 베를린의 소극장 발하우스 오스트. 연극 ‘귀신놀이’ 공연을 마치고 나온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40)의 손을 붙든 반백의 한국인이 대뜸 말했다. 이윤택 연출(61)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하. 그 밤의 느닷없던 만남이 이렇게 긴 오고 감의 시작이 될 줄은 당연히 몰랐다.”(부크)
스펀지 인형을 앞세운 물체극 ‘베를린 개똥이’.
아기장수 설화를 재해석한 꼭두각시극 ‘산 너머 개똥아’.내년 1월 3일 개막하는 제10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는 이 연출의 ‘산 너머 개똥아’와 부크 연출의 ‘베를린 개똥이’를 같은 날 나란히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산 너머…’는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브 삼아 혼란한 세상에 출현해 악을 처단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어린이극이다. ‘베를린…’은 이 연출의 제안으로 독일 작가 마르쿠스 브라운(42)이 ‘산 너머…’를 개작해 2007년 밀양에서 초연한 뒤 베를린, 함부르크, 쾰른에서 독일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통일된 독일의 혼란상을 다룬 내용으로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공연하고 독일어 자막을 얹었다.
―독일어로 바꾸지 않은 까닭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그게 중요한 콘셉트였다. 독일의 현 시대 상황과 한국의 전통극이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독일어 자막을 치운다.”(부크)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낯설게 하기’ 게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땅에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관객과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가 발생한다. 한국 배우들이 베를린에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곳 관객이 느끼는 거리감과 비슷한 듯 다르다. 연극이 언어를 뛰어넘어 다양한 소통을 열어냄을 보여주는 게임이다.”(이)
―부크 연출의 작품에서 어떤 점을 발견하고 한국으로 초대한 건가.
“독일은 세계 실험극의 메카다. ‘귀신놀이’는 우연한 걸음에 본 거였다. 사람과 인형이 함께 노는 물체극이었는데, 정밀한 세련미를 갖췄으면서도 자유로웠다. 특히 소파 속을 채우는 스펀지 폐기물로 만든 인형이 인상적이었다.”(이)
―부크 씨는 2년 전 이 연출의 극단을 이끌고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를 연출했다. 혹시, 독일 연극계 분위기에 대한 반감 때문에 해외 협력 작업에 눈을 돌리게 된 건가.
“‘베를린…’의 대사를 인용하겠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잘 정돈된 세상은 옛 세상의 빛을 잃게 만든다. 모든 헛소리들, 지겹다. 개인의 영혼이 악마처럼 정돈된 세상에 뒤덮였다….’ 독일 연극계에는 개별성이 없어졌다. 다들 어떤 경향에 몰두한다. 온통 심리적 리얼리즘뿐이다. ‘자연스러워라’ ‘진짜가 되라’ 요구한다. 동의할 수 없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진짜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너무 지루하다. 사람이 자연스러운 건 갓난아기 때뿐이다. 연극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을 어떻게 갖고 노느냐의 문제다. 한국 연극에서는 그런 시도들이 풍성하게 발견된다.”(부크)
―듣고 보니 무대 위에서 연극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독일 연극은 현실성의 포로가 됐다. 배우들이 평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일상인 양 이야기한다. 그것만이 전위이고 좋은 연극이라고 보는 풍조…. 한국 대학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년부터 어린이극 위주로 활동할 작정이다. 안데르센 동화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있다. 열네 살 안데르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펼치는 상상의 세계다. 내 연극도, 먹물 든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연극은 결국 놀이인데 문학성과 사회성 등의 가치로 연극성을 억압했다. 어린이극에서는 거짓말을 못 한다. 어린이 관객은 지루한 걸 보여주면 바로 떠든다. 재미있으면 종일 꼼짝 않고 본다. 상상을 통한 연극성으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통로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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