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도 놀이처럼 편하게 받아들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명상 서적 ‘비울수록 가득하네’ 펴낸 ‘힐링의 어머니’ 정목 스님

출가 뒤 참선 수행 10년을 빼면 20여 년간 줄곧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온 정목 스님. 예나 지금이나 고래를 좋아한다는 스님은 숨김이 없었다. “이전에는 옳고 그른 게 많아 피곤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게 느껴지더군요. 아름다운 마음의 여백을 찾으세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출가 뒤 참선 수행 10년을 빼면 20여 년간 줄곧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온 정목 스님. 예나 지금이나 고래를 좋아한다는 스님은 숨김이 없었다. “이전에는 옳고 그른 게 많아 피곤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게 느껴지더군요. 아름다운 마음의 여백을 찾으세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비구니가 DJ를 한다니까 궁금해서인지 1년 내내 인터뷰를 했어요. 심지어 선데이서울에서도 섭외가 들어왔어요, 호호.”

1990년 불교방송 개국 당시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최초의 비구니 DJ로 주목받았던 정목 스님(53)은 이제 ‘힐링의 어머니’로 불린다.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쌤앤파커스)는 30만 부 가깝게 팔렸다. 최근 명상집 ‘비울수록 가득하네’(쌤앤파커스)를 출간한 스님을 17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한 명상센터에서 만났다.

○ “단골 만들지 마세요”

2010년 정목 스님은 처음으로 주지가 됐다. 은사 광우 스님이 창건한 서울 성북구 삼선동 정각사다. 평생 주지에는 뜻이 없다며 사양해왔지만 은사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주지를 맡게 됐다.

은사는 불경을 통해 누구나 불교를 쉽게 접해야 한다며 가난한 학승들을 돕고 불경 번역을 후원했다. 대웅전은 나무 대신 값싼 시멘트로 짓고 시설을 고치지 않아 사찰 내에 쥐들이 떼로 돌아다녔다.

절을 보수할 때 은사의 뜻을 지키기 위해 시멘트 대웅전을 그대로 남겼다는 스님은 정각사가 마을회관 같은 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절 안의 평상에 앉아 나물 다듬고 수다 떨다 돌아가요. 꼭 포교해야 하나요?”

정목 스님이 제자들에게 자주 하는 잔소리가 있다. “돈 아낀다며 도매시장 찾지 말라고 해요. 싸고 편하다고 단골 만들어도 안 돼요. 쌀이나 참기름 살 때 주변 가게에서 골고루 사라고 해요. 거창하게 말하면 세상 만물이 연결돼 있다는 연기(緣起) 얘기지만, 결국 모두 맘 상하지 않고 잘 어울려 살자는 거죠.”

○ “앞 먼저 밀면 앞길 창창, 뒤부터 밀면 중노릇 잘해”

어릴 때부터 고래 같은 동물이 좋았다는 스님의 눈에는 단발머리 어린 소녀가 그대로 담겨 있다. 16세 때인 중3에 출가했다. 은사는 나중에 커서 출가해도 된다며 거듭 말렸다. 삭발하던 날, 그 기억이 어제 같다.

소녀의 단발에는 가위로 머리카락이 잘려져 군데군데 ‘새집’이 생겼다.

“지금도 늦지 않다. 다시 생각해라.”(광우 스님)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미는 삭도질에 앞서 은사의 엄숙한 말. 하지만 소녀는 새집머리와 늦지 않았다는 말이 겹쳐 웃음을 참느라 용을 썼다.

“앞머리를 먼저 밀면 앞길이 훤하고, 뒤부터 밀면 중노릇을 잘한다.”(광우 스님)

은사는 앞머리를 먼저 밀었다. 기자가 ‘정말 그대로 됐느냐’고 묻자 정목 스님은 “출가, 후회한 적도 없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며 웃었다.

○ 세상 속으로 더욱 깊숙이

스스로 정목(正牧·바르게 키운다)이라는 법명을 골라 은사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당찬 스님도 26세 때 “세상 사람들은 어렵게 사는 데 스님들이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며 승복을 벗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 은사께서 ‘땅에 넘어진 자는 땅에서 일어서야 한다’는 지눌 스님의 말을 하시는 거예요. 머리에 뭘 맞은 것처럼 마음에 충격이 왔어요.”

결국 스님은 환속이 아니라 말기 암 환자를 만나는 병원 봉사와 ‘자비의 전화’ 개설, 명상 수련 등을 통해 세상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세월은 어디로 간 걸까? 스님은 때로 고래를 사랑한 소녀였다가 은사와 ‘맞짱’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 수행자였다가 다시 넉넉한 힐링의 안내자가 됐다.

“고래는 한쪽 뇌가 잠잘 때에도 다른 한쪽 뇌가 깨어 있고, 정말 놀이를 좋아한다고 해요. 치유는 기쁨뿐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도 놀이처럼 편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목 스님#비울수록 가득하네#비구니#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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