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신화 속 기린은 우리가 아는 기린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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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뿔나고 몸엔 오색 털… 길조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중요민속문화재 제65호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이하응(1820∼1898)의 관복을 장식했던 표장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신
분 관직마다 문양이 다른데, 대군은 기린을 수놓은 흉배를 달았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중요민속문화재 제65호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이하응(1820∼1898)의 관복을 장식했던 표장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신 분 관직마다 문양이 다른데, 대군은 기린을 수놓은 흉배를 달았다. 문화재청 제공
요즘 세대는 기린이라면 ‘런닝맨’에 나오는 배우 이광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구가 아프리카 초식동물(giraffe)을 닮았다고 생긴 별명이다.

원래 기린은 목이 긴 짐승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동양에서 기린(麒麟)은 머리에 뿔이 나고 오색 빛깔 털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신령한 네 동물)로 꼽히는데, 태평성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길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린이 기린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1360∼1424) 때 동아프리카를 다녀온 환관 정화(鄭和)가 이 동물을 황제에게 바치며 처음 기린이라 소개했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 기린이 나타났다는 ‘아부’였던 셈. 엄청난 돈을 쓴 항해가 쓸데없진 않았다는 면피용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기린이란 명칭은 일본에서 쓰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이시카와 지요마스라는 동물학자가 정화의 고사를 인용해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한국 일본 대만은 기린이라 부른다. 그런데 막상 근거를 제공한 중국에서는 이 동물을 ‘장경록(長頸鹿·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다.

신화 속 기린도 성품이 온화하다.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이나 ‘광아(廣雅)’에는 “짐승은 보통 발 있으면 차고 뿔 있으면 부딪치려 하나, 기린만은 어진 성품으로 그렇지 않다”거나 “인을 머금고 의를 품어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다”고 묘사했다.

유교 사상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댄다.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위대한 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짜 기린은 결코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물론 배우도 실제 성격이야 다르겠지만.

(자료: ‘한자의 모험’(비아북)·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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