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김서형, 낯선 매력

  • 우먼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16시 40분


wannabe star
폭발적으로 대사를 쏟아내던 ‘아내의 유혹’의 잔상이 남아서였을까. 대충 넘길 법한 질문에도 쉼표를 찍어가며 진중하게 고민하는 배우 김서형은 꽤 낯설었다. 하이웨이 드라이브보다 오솔길 산책 같았던 그와의 토크.
헤링본 쇼트 재킷 JKOOby디누에. 블랙 레더 스커트 봄빅스엠무어. 블랙 큐빅 이어링 케이트앤켈리. 큐빅 장식 블랙 펌프스 나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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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 MBC 50부작 월화드라마 ‘기황후’에서 김서형(40)이 원나라 황태후 역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이다. 기품과 위엄이 있으면서 가볍지 않고, 남성 위주의 궁궐에서 상대를 압도할 카리스마가 있는 그 또래 배우가 흔하던가. 새벽 5시까지 드라마를 촬영했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스태프와 장난을 치던 그는 모니터에 뜬 자기 사진을 보곤 “너무 여우같이 나왔는데”라며 셀프 디스할 정도로 털털했다.
“드라마 촬영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 NG가 날 때도 있지만, 다들 잘 안 내요. 지금은 초반 분량이 많지 않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괜찮지만 SBS‘아내의 유혹(2008)’을 촬영할 때는 힘들어서 NG도 많이 냈어요. 분량도 그렇고 배역을 잘 소화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신애리가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아서 계속 소리를 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멍해지죠(웃음). ‘기황후’ 촬영을 하며 어린 배우들이 참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창욱 씨가 막내인데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은데도 잘하고, 백진희 씨도 잘해요. 함께하는 선배님들이야 워낙 ‘한 연기’ 하시는 분들이라 더불어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핑크 슈트 케이수by김연주. 골드 이어링 제이티아라. 오렌지&블랙 브레이슬릿 케이트앤켈리.
핑크 슈트 케이수by김연주. 골드 이어링 제이티아라. 오렌지&블랙 브레이슬릿 케이트앤켈리.


‘기황후’로 생애 첫 사극 도전
1994년 KBS 1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드라마 ‘파리의 연인’ ‘굳세어라 금순아’ ‘아내의 유혹’ ‘샐러리맨 초한지’ 등에 출연하며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그지만 사극 연기는 ‘기황후’가 처음이다. 그는 “정통 사극과는 다르고 원나라 사람이라 의상과 소품이 기존 작품과 많이 다를 것 같아 기대가 컸다”며 “캐스팅되고 첫 촬영을 기다리며 줄곧 설레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황후화’ ‘야연’ 같은 영화를 참고했다는 그는 “초반부터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적인 부분을 체크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김서형표 황태후에게선 ‘황후화’에서 고혹적인 매력을 뽐낸 공리의 모습도 보였다.
여배우의 대다수가 미모를 타고나지만 타고난 걸 가꾸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1992년 미스 강원 선발대회 출신으로 우월한 외모를 지닌 그가 요즘 꽂힌 건 필라테스와 자이로토닉.
“여름에는 남산 산책로를 즐겨 찾아요. 자전거도 타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도 하고, 조깅도 하고요. 잠이 부족하면 바로 뾰루지가 올라오는 편이라 피부를 진정시킬 수 있는 패치나 팩, 약을 구비해놓고 자주 써요. 외출할 때는 화장한 얼굴에 덧바를 수 있는 보습크림, 미스트와 립 밤을 챙기죠.”
이날 화려한 모피 코트부터 어지간한 사람이 입었다간 굴욕당하기 십상인 핫핑크 정장까지 멋스럽게 소화한 김서형. 평소 VIP 시사회나 제작 발표회에서는 시크한 옷차림을 즐긴다. 그는 “무난하게 입으려다 보니 블랙과 화이트를 찾게 되더라”며 “시크한 역을 맡을 때가 많아 그런 옷을 자주 입지만, 사실 여성스러운 의상도 좋아한다”고 했다.
일이 많든 적든 연기하는 순간을 즐긴다는 그는 “어쨌든 직업란에 배우라고 써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멋있는 직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며 웃었다. 오랜 기간 스크린에서 활동하다 브라운관에서 ‘아내의 유혹’으로 본격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연기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달려간다. 소설가 김영하의 ‘피뢰침’을 각색한 저예산 영화 ‘소설, 영화와 만나다’에 출연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는 “꽂히는 시나리오·캐릭터만 있다면 뭐가 중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삶에서 연기가 제일 재밌고 중요해요. 연기하지 않고 쉴 때 오히려 힘들어요. 배우는 드라마든 저예산 영화든 상업 영화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떤 배우든 좀 더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작품을 하면 좋겠지만, 그런 기회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에 감사하죠.”
그는 영화 ‘소설, 영화와 만나다’ 중 ‘번개와 춤을’ 편에 출연했다. 함께 출연한 최원영은 “김서형과 함께 연기하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김서형은 “원영 씨가 먼저 시나리오를 받고 제가 여주인공 미정 역에 어울릴 것 같아 추천했다더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누가 출연하는지 물었는데 최원영 씨가 나온다고 해서 ‘원영이면 해야지’ 생각했어요. 같은 소속사라서 사무실에서 몇 차례 이야기 나눠봤는데 말이 잘 통해요. 원영 씨가 저더러 ‘시나리오를 읽는데 김서형이 하면 재밌을 요소가 보였다’고 했어요. 그걸 발견해준 건 대단한 안목이죠. 미술을 공부해서 감각적이고 재능이 많은 배우예요. 그래서 정말 고마웠죠.”
소속사 식구가 발견한 김서형의 장점을 자신도 알고 있을까.
“장점…, 잘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KBS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대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이야기였죠. 저는 배우의 길을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이에요. 누가 제 대신 연기를 해줄 수도 없고, 성실함 하나가 제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악역을 맡거나 소리 지르는 연기를 하다 보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일도 잦을 터. 그러나 그는 “일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즐겁다”고 했다.
“남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즐거워서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래요.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는 즐거운 상태죠. 돌아서면 잘 잊어버리는 편이기도 하고, 일이 아닌 부분에서는 오히려 좀 무심한 면도 있어요. 남들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일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하루를 살더라도 공들여 살고 싶어요. 그렇게 꽉 찬 에너지로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것 같더라고요. 완벽주의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고 공백기가 찾아올 때 받는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풀죠.”
블랙 레이스 튜브 톱 드레스 케이수by김연주. 핑크 이어링 프란시스케이. 오렌지 스톤 브레이슬릿 케이트앤켈리.
블랙 레이스 튜브 톱 드레스 케이수by김연주. 핑크 이어링 프란시스케이. 오렌지 스톤 브레이슬릿 케이트앤켈리.



아직도 연기는 어려운 숙제
내년 초 개봉 예정인 조근현 감독의 영화 ‘봄’(가제)에서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월남전 참전 이후 불치병에 걸린 조각가가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살아갈 힘을 얻고 예술혼을 펼치는 과정을 그린 작품에서 그는 박용우와 부부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자신 있게 찍은 영화”라며 웃었다. 영화속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봄’은 참 간략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며 신중하게 단어를 정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픈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는 정숙이라는 역인데, 영화를 찍고 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었어요. (그의 헌신은) 남편의 예술을 위해서였을까요, 자신의 삶을 위해서였을까요? 1960년대가 배경인 작품이라 정숙이는 그 시대의 강한 여성상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현대에 그 같은 여성상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운 작품 같아요.”
자신의 워너비를 “모든 배우”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고 한다.
“언젠가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요새 좀 그래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연기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김서형식 연기를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이에요. 연기에는 답이 없잖아요. 사람들이 잘한다고 평가해줄 때, 어떤 부분을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연기하면서 시청자에게 최면을 거나? TV 화면이 작아서 몰입하는 건가?(웃음) 더 뛰어넘어야 할 뭔가가 분명 있는데 그게 연륜이 쌓여야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고, 경력이 쌓이면서 습관처럼 하는 연기에 안주할까 봐 두렵죠. 연기는 알 것 같으면서도 도통 모르겠어요.”
고민 많은 여배우 김서형은 ‘즐거운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진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진화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배우로서는 지금도 좋아요. 하지만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한 번 살다 죽을 인생인데 영화도 더 찍고 싶고 운이 좋아 청룡영화제 같은 곳에서 수상도 하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과연 그것만이 의미 있는 진화일까?’라고 고민도 해봐요. 지금도 벅찬 배역들을 하고 있지만, 더 벅찬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좋겠어요.”
일 얘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는 워커홀릭에게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묻는 건 부질없어 보였지만 큰 스캔들 없이 연예계에서 버텨온 그의 이상형이 궁금했다. 일곱 살 난 요크셔테리어 ‘꼬맹이’랑 사는 재미가 어떤지 묻자 “정말 예쁘다”며 “그렇게 충성을 다하는 남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글쎄요. 인물이야 뛰어나면 좋겠지만(웃음), 혼자 있는 게 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저를 좋아한다면 저도 다 좋아요. 배우 중에선 소지섭 씨를 좋아해요.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남자라면 충분히 끌릴 것 같아요.”
연기 외에 꼭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없다”고 하며 “안 해본 장르에 도전하고, 안 해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천생 배우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인생 뭐 있나요.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뭘 하든 최선을 다하고, 늘 한결같이 사세요. 제 자신에게도 늘 하는 말이에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뭔가’가 올 거라 믿거든요. 최소한 뜬구름만 잡고 끝나지는 않겠죠.”

글·구희언 기자 | 사진·안지섭(abSTUDIO 02-548-5758) | 의상&소품협찬·케이수by김연주(02-3444-1730) 엘페by진도모피(02-850-8411) 케이트앤켈리 제이티아라 프란시스케이(02-508-6033) 봄빅스엠무어(02-3442-3012) JKOOby디누에(02-3444-4756) 나무하나(02-512-4329) | 헤어·백흥권 | 메이크업·안성희 | 스타일리스트·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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