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서 벌어진 장성택의 전격적 실각과 처형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 줬다. 인권 탄압이란 점은 뚜렷하지만 한국에선 수수방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올해 9월 ‘통일한국의 과거 청산’(나남)을 출간한 김하중 전남대 교수(53)를 만났다. 법무부 검사로 1999년 통독 현지를 시찰하고 통일부에 파견돼 장관 법률자문관을 맡았던 김 교수는 “시급히 북한 인권 침해 조사 기구를 설립해 통일 후 처벌할 북한의 정권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독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직후 각 주 법무장관들이 모여 합동회의를 열고 동독의 정권 범죄를 감시하고 청산하기 위한 준비 기구로 중앙법무기록조사처를 설치했습니다. 통독 이후 동독에서 벌어진 정권 범죄를 처벌할 때 여기서 수집한 자료들이 증빙자료로 제출됐습니다.”
독일은 나치 전범과 동독의 체제 범죄자 처벌에 엄격한 법치주의를 적용했다. 특히 체제범죄에 대해선 그 체제가 존속되는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시킴으로써 정상국가가 된 뒤 과거의 범죄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독일의 과거 청산에는 ‘법률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정의에 우선한다’는 라드브루흐 공식이 적용됐습니다. 얼핏 보면 정의보다 법을 앞세운 것 같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보편적 인권을 침해한 참을 수 없는 법률은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체제 아래서 이뤄진 ‘합법적 범죄’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대표적 사례가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을 향해 동독 병사들이 총격을 가한 사건들이다. 통일된 독일에선 이를 범죄로 처단했으며 그 최종 책임자로서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을 법정에 세웠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장성택 처형은 물론 금강산에서 북한 초병의 총격을 받아 숨진 박왕자 씨 사건이나 명백히 남한 영해로 넘어와 46명의 남한 해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안함 폭침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체제 범죄는 형사와 민사로 나뉜다. 통독 이후 대표적 민사소송은 동독에서 이뤄진 몰수재산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한국에서도 38선이 그어지기 전 북한 정권에 의해 토지와 재산을 몰수당한 사람들의 재산권 회복을 위한 줄소송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통일 이후 북한 영토와 재산을 정부 소유로 일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원칙을 세워 미리 국민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지 않고 통일된 이후 밀어붙였다가는 정부를 상대로 한 각종 소송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이에 대한 법적 대비책 마련도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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