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이영돈 채널A 상무에게서 “라면을 파 보자. 재밌지 않겠나”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재밌겠다”고 답한 걸 구 PD는 지금 후회한다. “2년 동안 ‘먹거리’ 팀에 있으면서 취재한 어떤 아이템보다 힘들었어요.” 보통 5, 6주면 한 아이템의 취재와 방영이 끝나는데, 라면에는 반년을 꼬박 매달려야 했다. 결과물은 ‘라면을 말하다’란 제목으로 1, 2부(12월 6, 13일)에 걸쳐 방영됐다.
취재는 라면을 사는 일, 그것도 아주 많이 사는 일로 시작됐다. 라면 구입비만 300만 원이 들었다. 200종이 넘는 라면을 종별로 3∼5개씩 샀다. 대형 마트만 네 군데를 돌았다. 마트 한 군데마다 카트 4대 분량씩의 라면을 샀다. “마트 손님들이 다 저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요. 친환경 전문점이랑 편의점도 돌았고요.”
‘라면을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되나’라는 실험에는 구 PD 자신도 참여했다. 라면을 주식으로 열흘 동안 생활했다.
“첨엔 신이 났어요. 원래 국수나 라면을 되게 좋아해요. 다양한 라면을 매일 맘껏 먹을 생각을 하니까 좋았죠.” 3일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라면이 슬슬 지겨워졌다. 5일째가 되자 김치찌개와 고기가 간절히 그리워졌다. “10일간 라면 30개 정도 먹었어요.”
국물 라면이 지겨울 땐 짜장 라면이나 비빔면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 “나트륨이 주안점 중 하나니까 국물 라면으로 한정했죠.” 실험이 끝나고 측정해 보니 참가자 모두 나트륨 수치가 올라가 있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상하게 구 PD만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실험 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서 그 좋아하는 술을 끊었거든요. 규칙적인 생활까지 했더니….”
착한 라면 만들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나트륨과 포화지방 함량을 낮춘 라면을 제조해 봤지만 성공이라 말할 수 없었다. “라면이라 부를 수도 없는, 맹맹하고 심심한 맛이 문제였죠. 라면 제조사에서 MSG 대신 넣는 핵산조미료가 핵심이었어요. 그 조미료 함량을 개당 0.2g에서 0.14g 수준으로 낮추는 걸로 만족해야 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라면의 이름을 시청자 게시판에서 공모했다. 지난해 2월 ‘먹거리…’ 첫 방송 이후 지금껏 올라온 게시 글 수를 초과하는 글이 답지했다. 1만 건 넘는 시청자 제안을 취합해 최종 선택한 이름은 ‘착한 라면 스텝 원’.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이는 착한 라면 제조를 위한 첫발을 떼었다는 의미죠.” ‘착한 라면 스텝 원’은 이름 공모에 참가한 시청자 중 선정된 100명에게 이달 말까지 1인당 5개씩 배달된다.
라면의 실체를 반년 동안 좇은 구 PD와 제작진, 이제 라면만 봐도 지치겠지. “취재가 다 끝나던 날, 뒤풀이 회식을 했어요. 애써 주신 연구원분들과 함께 연구실 주방에서 술도 한두 잔 하면서. 새벽에 이 상무님이 외쳤죠. ‘거, 해장용으로 라면 좀 끓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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