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구멍을 통해 보이는 거의 벌거벗은 여성의 뒷모습이 담긴 빨간색 표지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덴마크 화가 크리스토페르 에케르스베르의 ‘아침 단장’이다.
프랑스 파리8대학 미술사 교수인 저자는 책 첫 문장에서 “나는 관음증 환자다.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더니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며 동참을 요구한다. 욕망의 대상을 그림 속에 가둬 간직하려는 욕망이 그림의 출발점이란다. 우리도 부끄러운 척, 점잖은 척을 버려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책에는 여인들이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몸을 말린 뒤 거울 앞에서 장신구를 착용하기까지의 몸단장 과정이 9개 장으로 구분해 담겨 있다. 기원전 1세기 폼페이 유적에 그려진 ‘몸단장하는 여인’ 벽화부터 1963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목욕하는 여인’까지 79점을 담았다.
저자는 그림 속 여성들을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여자,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여자’로 상정하고 모두 ‘그녀’라고 부른다. 그는 직접 또는 그녀의 입을 빌려 그림에 담긴 몸단장의 의미와 역사를 풀어낸다. 여성의 몸단장은 우리와 예술가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책은 유쾌하다. 저자는 독자가 무안할 정도로 여체를 찬양하고 때론 “‘목욕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눈을 깨끗하게 닦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라며 능청도 떤다. 그림 속 모델이 신은 스타킹 발가락 부분에 난 구멍에서 화가의 생각을 읽어낼 정도로 꼼꼼함도 자랑한다.
책을 읽으면 눈앞의 매력적인 여성을 그리면서 화가가 냈을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는 “열쇠 구멍으로 (여자를) 엿보고 싶다”고 동료 화가에게 털어놓고, 시인 보들레르는 여체를 바라보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의 시선이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비굴할 정도로, 몸의 윤곽에 드러난 가장 가벼운 굴곡까지 쫓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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