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엑소 ‘으르렁’)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조용필 ‘바운스’) 운율 맞춘 대구(對句) 같다.
‘빠, 빠빠빠, 빠, 빠빠빠빠’(크레용팝 ‘빠빠빠’) ‘알랑가 몰라/아리까리하면 까리해’(싸이 ‘젠틀맨’) 그 뜻이 알쏭달쏭하다.
2013년 대중의 귓전에 가장 많이 맴돌았던 가사를 돌아봤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반복됐다. 재미가 의미를 앞섰다. 글말보다는 입말이 사랑받았다. 억지스러워도 쫄깃해서 군침 돌았다. 멜론닷컴에 따르면, 이용자들의 가사 조회수는 올해 들어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 심장을 쫄깃하게 한 가왕의 바운스
2013년 첫 히트곡이었던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는 충실한 복선이 됐다. 멤버 유리의 ‘왜 그랬대. 궁금해 죽겠네/왜 그랬대. 말해봐봐, 좀’은 시대착오적인 랩 가사로 회자되기도 했지만 ‘아이 갓 어 보이 멋진/아이 갓 어 보이 착한’의 국적불명 문법 파괴는 2013년 노랫말 대전의 서막이었다.
올 4월 19집 ‘헬로’로 귀환한 가왕도 노랫말의 무게를 내려놨다. 한국적 정한(情恨)을 김장김치처럼 눌러 담던 조용필의 쫄깃한 목소리는 21세기식 악곡과 가사에 묘한 부조화로 미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bounce, bounce’를 요즘처럼 미국 본토 식으로 ‘배운스, 배운스’처럼 발음했다면 그 맛이 살았을까. ‘빠운스, 빠운스’ 두근대는 심장은 트램펄린같이 혀끝에 더 탄력 있게 맴돌았다.
같은 달 나온 싸이의 ‘젠틀맨’은 억지스러웠다. ‘알랑가 몰라’ ‘아리까리하면 까리해’ ‘빨리빨리 와서 난리네’ ‘난리난리났어. 빨리해’는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처럼 기능하도록 설계된 한글 가사였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강해진 스페인어 사용 인구를 겨냥한 포석으로 분석했다. 차 평론가는 “‘젠틀맨’은 한글로 돼 있지만 단어의 배치와 강세에 있어 스페인어 노래들과 닮은 구석이 많다”면서 “세계 진출을 위한 언어장벽 극복 방안으로 영어 대신 발음에 주목한 한글을 택했다. 세련된 전략이다”라고 평가했다.
○ ‘으르렁’은 ‘으르렁’으로 번역된다
이런 전략은 올 8월에 나와 하반기를 ‘접수’한 엑소의 ‘으르렁’에서도 이어졌다. 영화 ‘늑대소년’이나 ‘트와일라잇’에서 불러온, ‘지켜주는 강한 남자’로서의 늑대 이미지는 후렴구의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의 일차원적 포효로 극대화했다. 중국어 버전에서도 후렴구의 ‘으르렁’ 부분은 한국어 그대로 발음된다. 조용필의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역시 일본어 버전에서 ‘바운스 바운스’ 그대로 남았다.
올 6월에 나와 한여름을 난타한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이런 경향의 꼭짓점에 있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소녀시대의 ‘지’처럼 입말을 굉장히 잘 살린 노래”라면서 “‘빠, 빠, 빠’의 발음 자체가 악곡과 멤버들의 귀여운 이미지와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해외 팝에서는 특징적인 의성어의 반복이 기술적 장치로 통용된 지 오래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이런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한국어 발음의 묘미를 살린 시도들이 대중가요에 재미를 더하는 장치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주류 가요계가 감각과 반복에 무게를 실었다면 인디 음악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이 눈에 띄었다. 차 평론가는 “가요에서 광고 카피 같은 축약과 반복이 득세한 반면 윤영배 강아솔 김목인 이아립 같은 인디 음악인들은 서사적인 가사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양극화 경향은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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