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4]“물에 떴으니 문학의 바다로 나아가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일 03시 00분


2091대 9… ‘좁은 문’ 뚫고 첫발 내딛는 신예 작가들

2014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손을 잡고 신예 작가로서의 첫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조 김석인, 동화 공문정, 중편소설 최윤혜, 희곡 김경민, 단편소설 이서수, 시 이서빈, 문학평론 박진아,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심우일 씨.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이소영 씨는 독일 체류 중이라 동참하지 못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14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손을 잡고 신예 작가로서의 첫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조 김석인, 동화 공문정, 중편소설 최윤혜, 희곡 김경민, 단편소설 이서수, 시 이서빈, 문학평론 박진아,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심우일 씨.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이소영 씨는 독일 체류 중이라 동참하지 못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다. 아이들에게 직접 지은 이야기를 들려줬고 ‘재미있다’는 아이들 반응에 그렇게 가슴이 두근대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동화를 짓고 고치기를 반복한 것은. 2년 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최종심까지 올랐지만 심사평에 후보작으로만 언급되고 아깝게 낙선했다. 오기가 생겨 작품을 다시 붙잡고 고치며 완성도를 높였다.

생후 9개월 난 아들 찬이를 재우던 중에 전화기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습니다.” “너무너무 기뻐서 잠든 아기를 깨워서 흔들며 한참을 웃었지요.”

2014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된 공문정 씨(32)는 당선 소식이 큰 격려로 느껴진다고 했다. “저 혼자만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거든요. 지난해는 찬이도 낳고 신춘문예에도 당선되고 아무래도 우리 찬이가 복덩이 같아요.”

2014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 인원은 지난해보다 210명 늘어난 2091명. 더 치열해진 경쟁을 뚫고 당선 통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중 0.4%인 9명뿐이다. 지난해 12월 23일 공동 인터뷰를 위해 서울 청계천로 1번지,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당선자들은 하나같이 벼락처럼 찾아온 축복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진즉에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TV를 보며 음식을 먹느라 부재중 전화가 온 줄도 몰랐어요. 그때만 해도 신문 구독하라는 전화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제 전화를 받으신 분의 첫마디가 ‘문화부입니다’ 하는 거예요. 그제야 부재중 전화가 당선 통보 전화였던 걸 알았죠.”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 박진아 씨(29)는 이화여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문학도다. 박완서 소설 연구로 석사를 마치고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마감일 도착분 원고까지만 받는 다른 신춘문예와 달리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마감일 우편 소인이 찍힌 응모작도 접수해 주잖아요. 제가 마감일 당일에 우편으로 응모했거든요. 얼마나 불안했는지 심사위원들이 제 원고가 늦게 도착했다고 내다 버리는 꿈까지 꿨다니까요. 하하.”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이서수(필명·31) 씨는 서점에 가던 길에 당선 통보를 받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취직했다가 그만두고 전업 작가 지망생으로 산 지 3년째. 매년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도 안 되면 정말 안 되는 거다’라고 생각한 순간 당선 소식이 전화기를 두드렸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쌍화탕을 하나 사서 마셨더니 그제야 실감이 나더군요. 작고 볼품없어도 세상을 향해 말할 마이크 하나만 내게 허락해 달라고 늘 기도했는데,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니 지금부터는 책임감 있는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심우일 씨(31)는 시인과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다가 영화평론가로 등단하게 됐다. 대학 때 쓴 시나리오를 유명 영화사에 보냈다가 ‘제목은 좋은데 내용은 많이 부족하다’는 답장을 받고 진로를 바꿨다고. 중앙대 국문과 박사과정생인 그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인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영화평론을 썼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을 때는 멍하니 아무 생각이 안 났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1시간쯤 지나니까 머릿속에 그간의 과정이 떠오르며 눈물이 나더군요. 연말에 연예대상을 받은 스타들이 우는 걸 보며 ‘왜 저럴까?’ 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올해 최연소 당선자인 희곡 부문 김경민 씨(26)는 이번 당선으로 2년 만에 다시 경사를 맞았다. 중앙대 연극영화학부에서 극작을 전공한 그는 2011년 ‘섬’이라는 희곡으로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입사 1년차 새내기 직장인인 그는 원고 마감일 우체국에 갈 짬을 내지 못해 어머니에게 대신 우편 응모를 부탁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글을 써야겠다고 각오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영영 다시는 못 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었어요. 당선 전화를 받고 ‘뭐가 되든 평생 글 쓰고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죠. 장막극을 써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꿈입니다.”

2014 신춘문예 당선자 중엔 유난히 늦깎이가 많다. 시 부문 당선자 이서빈 씨(53)는 10년 넘게 시를 쓰면서도 그 자체가 행복하단 생각에 객관적 평가를 받아 볼 생각은 못 했다. “상상력이 넘치는 시가 담긴 젊은 시인들 시집을 보다가 ‘내가 그간 너무 안일하게 즐기기만 한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늦게 등단했으니 몇 배로 노력해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조 부문 당선자 김석인 씨(54)는 경북 김천시 김천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직 경력 27년의 선생님이다. 7년 전 김천을 무대로 활동해 온 시조 시인 정완영 선생과의 인연이 그를 시조의 길로 이끌었다. “아내에게 제일 먼저 당선 소식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학인 시조를 세계인의 문학 장르로 키우는 데 일조하는 것이 꿈입니다.”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 최윤혜(필명·46) 씨는 고전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다.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간 논문과 책도 여러 권 냈다. 틈틈이 소설을 썼지만 중편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형식과 규격에 맞춘 글이 아니라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이번 당선작도 실은 문장 하나로 시작해 중편이 됐어요.”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이소영 씨(40)는 해외 주재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국제전화로 당선 소식을 접했다. 독일에서 산 지 2년 반이 됐다고 했다. “끊임없이 발장구를 쳐도 계속 물에 빠지는 느낌이다가 수영하는 방법을 처음 터득하는 순간처럼, 이번 신춘문예 당선은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줬다고나 할까요? 이제 처음 물에 떴으니 앞으로 멀리 바다까지 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겠습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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