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 惡의 과거와 현재… 어떻게 진화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4일 03시 00분


◇2666/로베르토 볼라뇨 지음·송병선 옮김/전 5권·각권 136∼548쪽/각권 1만800∼1만6800원/열린책들

스페인어권 대표작가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의 유작 소설이다. 사후 매년 한 권씩만 출판해 달라는 작가의 유언을 어기고 2004년 한꺼번에 5권이 출간됐고, 한글판도 마찬가지로 이번에 5권이 전집 형태로 출간됐다. 2008년 나온 영어판은 뉴욕타임스와 타임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5권을 합쳐 1800쪽에 이르는 분량이 독자를 압도한다. 각권의 주인공이 모두 다른 데다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 전통을 계승해 단선적 이야기 전개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인 듯하다.

1권만 해도 노벨상 후보로 언급되는 독일 출신의 80대 작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연구하는 네 명의 문학연구자들의 연애담이 주를 이뤄 전체 소설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소설은 종적을 감춘 아르킴볼디의 최종 행선지인 멕시코의 가상도시 산타 테레사를 향해 느리게 나아간다.

칠레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거주했던 작가가 미국과 접경한 도시로 설정한 산타 테레사는 멕시코 도시 후아레스를 모델로 했다. 후아레스는 1990년대 초반 10년에 걸쳐 여성 200여 명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도시로 인신과 마약이 거래되는 악의 전시장과 같은 공간이다. 작가는 4권 전체를 여기서 살해된 여성들의 검시보고서 나열에 할애할 정도로 이 공간을 탐색하는 데 천착한다. 작가는 아르킴볼디가 작가가 된 계기였던 유대인 작가의 일기를 통해 산타 테레사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대학살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드러낸다. 현대성의 본질을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으로 포착한 노회한 작가의 통찰력이 빛난다.

소설의 제목 ‘2666’도 의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666과 관련 있다는 해석부터 작가의 전작 소설 ‘부적’에 나오는 ‘2666년의 공동묘지처럼 보인다’는 구절에서 따 왔다는 의견도 있다. 이 방대하고 난해한 소설을 읽기 전에 출판사가 내 놓은 해설서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를 일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해설서 값도 666원이라고.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2666#로베르토 볼라뇨#산타 테레사#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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