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동편엔 맨드라미 몇 송이/푸르른 호박 넝쿨 외양간을 타 오르네./조그만 마을에서 꽃 소식을 묻노라니/접시꽃 한 길 높게 붉은 꽃을 피웠네.’
추사 김정희의 시 ‘시골집’이다. 평화로운 시골집에 맨드라미와 접시꽃이 선명하다.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와 위로 쭉쭉 뻗어 가는 접시꽃은 자손들이 벼슬길에 오르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자식의 성공을 빌며 꽃씨를 뿌리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활짝 피어났다.
한시 연구에 매진해 온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우리 한시 300수를 모아 책을 펴냈다. 정 교수가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한시 한 수씩을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은 글을 엮어 낸 것.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작업을 하니 5언절구와 7언절구가 300수씩, 모두 600수가 모였다. 7언절구를 먼저 펴냈고, 5언절구도 뒤이어 책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차곡차곡 모은 한시가 ‘재워 둔 곶감’처럼 든든하고 감춰 둔 시인의 말을 헤아리는 것은 ‘소풍날 보물찾기’처럼 재미있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공들여 채워 넣은 보물상자를 열어 보이는 것 같다. 번역도 시가 되도록 삼사조 가락을 맞췄다.
시대가 달라도 자연에서 위안을 얻고 세월의 흐름을 야속해하는 사람 마음은 그대로다. 밥벌이의 고단함도 변함이 없다. 훌훌 버리고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약초 섬돌 맑은 바람 내 늙음을 가려 주고/대숲 시내 밝은 달빛 내 마음을 꼬드기리./간밤에 귀전(歸田)의 뜻 이미 결심했으니/눈 녹은 강남 길을 필마 타고 가리라.’(고려시대 문신 이성의 ‘나는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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