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자회견… 문화계 2인 “나라면 이렇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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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사진)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할 얘기를 똑 부러지게 했다는 호평도 있지만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쉽다는 말도 나온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48)와 ‘YS는 못말려’ 등 정치풍자집을 내온 방송작가 장덕균 씨(49)가 “나라면 이렇게 썼다”라는 시각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문 화법과 유머 등 ‘소통 코드’를 짚어봤다. 》

▼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했더라면…”

가령, 이런 시작은 어땠을까? “국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시작했다면….

최소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축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보다는 한발 더 국민에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아침은 맛있게 드셨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면 일상적인 친근함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지금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인사말이 오고가는지를 살펴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첫 인사말은 연설 전체의 길을 안내하는 최초의 표지판이다. 기자회견도 첫 1, 2분이 중요하다. 첫마디부터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발언으로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 내내 활자언어를 사용했다. 연설문을 내려받아서 ‘읽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귀를 통해 ‘들을’ 때는 활자언어가 소통에 걸림돌이 된다. 영상언어로 이야기해야 귀에 잘 들어온다. 그러기 위해선 언어가 구체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이기 위해선 상징과 비유가 필수다. ‘생선이 신선하다’라고 하지 말고 ‘알래스카에서 왔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이미지가 보이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질의응답에선 “업무 후 관저에서 뭘 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은 국민에게 대통령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대통령도 퇴근 후 TV 드라마를 볼까”와 같은 사소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이런 대답은 어땠을까. “요즘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다던데 저도 보고서 안 읽고 그런 드라마 보고 싶어요”라며 얘기를 풀어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별 다섯 개 만점에 내용에는 별 넷을, 형식에는 별 세 개 반을 주겠다. 내용을 압도하는 게 형식일 수 있는데 형식이 내용을 못 따라잡았다. 소통에 중점을 두었다기보다는 꼼꼼하고 촘촘한 브리핑 같았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정리=조이영 기자

▼ “소도 알아듣게 소통… 썰렁 유머 기꺼이” ▼

박근혜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 사실, 미국 대통령들 기자회견처럼 간간이 ‘빵빵 터지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다. 나뿐 아니라 국민들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의 유머가 썰렁하다는 사실을.(“돼지를 한 번에 굽는 방법은 코에 플러그를 꽂는 것” 같은 박 대통령의 이전 유머를 떠올려 보라!)

그런데 ‘썰렁 유머’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훌륭한 웃음 코드가 된다.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특유의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국민 여러분, 제가 ‘썰렁 유머’를 한다는 기사가 가끔 나던데, 결단코 남북문제와 경제는 썰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휘∼이익. 순간 기자회견장엔 찬바람이 불겠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허술한 유머로 애쓰는 모습에서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과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기자회견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불통 논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가장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대목이었는데, 오히려 가장 덜 소통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원칙을 지키는 것을 불통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물론 옳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고 다가가기 위한 자리임을 생각할 땐, 간결한 ‘썰렁 유머’ 한마디가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도 있지만, 소도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소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딱딱한 기자회견에서 거의 유일한 ‘구어체’ 문장인 “통일은 대박이다”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경박하다” “쉽게 와 닿는 표현이다”, 갑론을박도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감하게 그런 표현을 구사한 점은 좋았지만, 이어지는 말에서 그 표현의 ‘맛’을 제대로 살리진 못한 점이 아쉬웠다. 대통령이 다음에 기자회견을 또 하게 된다면, 그땐 ‘썰렁 유머’라도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박 대통령 대∼박!”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장덕균·tvN 코미디 빅리그 메인작가
#박근혜#기자회견#소통#연설문#썰렁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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