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일만 하던 대한민국 남자들이 멋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화와 소비생활에도 신경을 쓰면서 ‘남성 전용’ 매장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복고풍의 고급 이발소가 ‘바버숍(Babershop)’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끄는 중이다. 사실 이 이발소는 예전 우리나라의 이발소와는 좀 다른, 정통 서양식 서비스와 인테리어를 갖춘 곳들이다. 바버(baber·이발사)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대를 이어 계승하는 직업 중 하나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바버숍은 남성만을 위한 문화공간을 표방하면서 이발과 면도는 물론, 전체적인 라이프스타일까지 제안하고 있다. 바버숍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남성들 사이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인기는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사고 싶어 하는 여성과 달리, 하나를 사더라도 더 좋은 것을 사고 섬세하게 관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성들의 심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A style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휴식하고 싶은 남성들을 위해 서울의 핫한 바버숍 2곳을 직접 찾았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남성 전용 이발소가 들어섰다. 독일어로 미스터(Mr.)를 뜻하는 ‘헤아(Herr)’라는 상호를 달았다. 이곳은 이발과 면도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오픈 한 달 만에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됐다.
헤아에서는 이발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얼굴형과 체형에 어울리는 가르마 비율을 알려주고 전체적인 헤어스타일도 제안해 준다. 경력 15년의 바버 김현수 씨는 가게 오픈 전 2주 동안 영국 바버숍에서 면도기술 교육을 받기도 했다.
매장 안에는 전문적으로 남성 구두를 관리해주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발을 하는 고객은 구두 관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선 영국과 미국에서 수입한 면도용품과 헤어관리 용품에다 넥타이, 커프스 등 패션 소품도 판매한다. 맞춤 양복점과 제휴를 맺어 매장에서 양복을 맞춰 입을 수도 있다.
바버숍 인테리어 또한 클래식한 면모를 자랑한다. 헤아 매장 곳곳에는 1920년대에 생산된 이발의자, 계산대, 벤치 등 옛스러운 감성이 묻어나는 소품들이 놓여 있다. 이발의자 한 대가 1000만 원이 넘는다.
매장 한쪽에는 남성을 위한 ‘쉼터’도 있는데, 바에서는 무료로 위스키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특히 2층에는 시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비즈니스센터가 마련돼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비즈니스센터에서는 간단한 문서작업을 하거나 팩스를 보낼 수 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면 이발 비용을 할인해주는 ‘아빠와 아들(Father & Son)’이란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이상윤 헤아 사장은 “남자들이 미용실에 가면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남성들이 편안하게 이발과 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전용 쉼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말끔하고 단정한 ‘리젠트 스타일’로 승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남성 전용 이발소 ‘낫띵 앤 낫띵’(Nothing N Nothing)의 빨간 벽에는 바버 최다니엘 씨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한가득 걸려 있다. 일러스트에는 포마드를 발라 앞머리를 빗어 넘기고 옆머리를 바싹 붙인 ‘리젠트 헤어스타일’의 남성들이 등장한다. 제임스 딘, 말런 브랜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특히 이곳은 단정하고 말끔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인한 남성의 매력을 자아내는 ‘리젠트 스타일’과 ‘포마드 스타일’ 전문점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20∼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단골 남성고객들을 상당수 확보했다. 고객들은 주로 전문직이거나 금융업계, 패션업계 종사자들이다.
도널드 케이란 예명을 쓰는 사장(한국인)은 리젠트 헤어스타일 연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포마드와 빗을 꼽았다. 그는 “원하는 헤어스타일에 맞게 적정한 양의 포마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빗은 촘촘할수록 좋다”고 했다. 또 “리젠트 스타일을 연출할 때는 머리를 말릴 때부터 머리 앞부분과 윗부분의 뿌리를 살려 볼륨감을 주고, 머리 옆 부분은 차분하게 가라앉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머리를 다 말린 후에는 빗으로 가르마를 만들어 주고, 포마드를 이용해 옆머리를 고정시켜야 한다.
전통적인 포마드 스타일로 승부를 하겠다는 케이 사장은 “리젠트 스타일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클래식한 헤어스타일”이라며 “리젠트 스타일의 완성은 얼굴이나 패션이 아닌 바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머리를 하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위스키를 제공한다. 또 원하는 고객들에 한해서 머리모양과 의류, 구두 등 전체적인 스타일에 대한 제안도 해 준다.
클래식한 남성을 위한 쉼터
바버숍 사장들은 운영을 시작한 이유를 공통적으로 “클래식한 멋스러움을 추구하고 싶어서”라고 입을 모았다. 이 사장은 “아직까지 국내에는 정장을 말끔하게 입고도 머리 스타일이 옷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클래식한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이발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케이 사장은 “여자 머리 스타일은 여자가, 남자 머리 스타일은 남자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한 스타일과 이발을 하면서 음악, 위스키를 함께 즐기는 문화를 고객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바버숍은 현재 서울 홍익대 앞과 한남동, 강남 등을 중심으로 점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커트 비용은 3만5000∼7만 원, 면도까지 하면 추가비용이 붙는다.
글=황수현 기자 soohyun87@donga.com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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