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닮은 듯 다른 겨울 가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9일 03시 00분


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출신 염종성-정연승 나란히 팝음반 출시

최근 서울 서교동 리드머 스튜디오에서 만난 작곡가 염종성(오른쪽)은 “간결은 재능의 자매”라는 러시아 작가 체호프의 말을 신봉한다고 했다. 정연승은 “사카모토 류이치, 양방언처럼 대규모 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근 서울 서교동 리드머 스튜디오에서 만난 작곡가 염종성(오른쪽)은 “간결은 재능의 자매”라는 러시아 작가 체호프의 말을 신봉한다고 했다. 정연승은 “사카모토 류이치, 양방언처럼 대규모 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차이콥스키나 스트라빈스키가 21세기 팝 음악을 만든다면 어떤 노래가 탄생할까.

최근 나란히 출시된 염종성(32)의 ‘컨설레이션’(위안)과 정연승(32)의 ‘윈테세이’(‘겨울 에세이’를 뜻하는 윈터 에세이의 줄임말)가 하나의 힌트가 될 수도, 황당한 답이 될 수도 있다.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도 비슷한 두 사람은 2000년대 초중반 앞서거니 뒤서거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에서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했다. 여름엔 백야가 오고, 겨울엔 최저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눈과 얼음의 도시에서 온 두 사람의 새 음반이 지닌 채도는 다르지만 한국 겨울에 둘 다 딱 어울린다. 거친 인디 음악보다 ‘토이’처럼 도시적인 가요에 가깝지만 그 전형적인 서술 구조는 피했다. 최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대의 70%는 러시아에서, 나머지 20%는 거기보다 더 추운 한국의 군대에서 보냈다”면서 웃었다.

염종성의 ‘컨설레이션’에 수록된 5분 35초짜리 ‘생각의 허구’는 추운 나라의 자작나무숲을 무심히 지나는 바람처럼 청자를 꿰뚫고 다시 싸고돈다. 4, 5가지의 단순한 선율만을 반복하는 염종성의 보컬은 성대에서 힘을 쭉 뺀 김동률 같다. 피아노와 현악이 성글게 비운 공간 사이를 바람소리처럼 허허한 전자 노이즈가 스테레오로 종횡하다가 둔중한 전자 드럼 패턴이 등장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정연승의 ‘윈테세이’에 담긴 ‘원스 어폰 어 드림 인 윈터’는 20, 30대 여성에게 많은 지지를 얻은 에피톤프로젝트(차세정)를 단박에 떠오르게 한다. 차세정이 이 곡에서 보컬을 맡기도 했지만, 피아노나 기타의 다정한 소릿결에 차가운 전자 음향이 적정량 결합해 감성적인 악곡을 만드는 방식이 닮았다.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낙차 큰 후렴구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염종성의 음악과 통한다. 물론 남성적인 염종성 식의 미니멀리즘에 비해 정연승의 악곡은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하다.

겨울 사운드트랙 같은 음반으로 데뷔하게 된 둘은 닮은 점이 많다. 지하철 소리나 읊조림 같은 소음을 오브제처럼 배치하는 것은 공통된 장기다. 인생의 길도 많은 부분 닿아 있다. 서울 명일동의 동네 친구이고, 배재고 동창이다. 염종성이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산실인 러시아로 2001년 떠났다. “그쪽 알파벳도 모르고 정말 무작정 갔어요.”(염종성) 대학 입시에 가까워져서야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음악과 언어를 동시에 배우며 고학 끝에 음악원 교수이자 러시아의 유명 현대음악가인 세르게이 슬로님스키에게서 입학 허가를 받아냈고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의 후배가 됐다.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던 정연승 역시 1년 뒤 한국의 음대를 때려치우고 염종성의 도전에 자극받아 동토로 떠났다. 둘 다 10대 후반에야 피아노 앞에 앉아 매일 10시간 이상 건반과 씨름했다. 빛과는 멀고 추위와는 가까운 그곳 생활을 6년씩 한 뒤에야 그들은 학위 한 장을 들고 귀국했지만 미뤄뒀던 병역을 마치니 서른이 목전이었다. 둘은 CF와 영화, 드라마 음악 작곡에 참여하며 실력을 벼렸다.

이들의 음악은 좀 싱겁다. 반복해 들어야 뒷맛이 전해온다. 둘은 “수필부터 발표한 셈”이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보낸 고독의 밤들이 여전히 음악에 나타나는 듯해요. 밤은 예술가의 시간이죠. 앞으로 발표하는 시, 논문, 소설도 지켜봐주세요.”(정연승)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염종성#정연승#컨설레이션#윈테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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