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소박한 무대에 맛깔나는 연기…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힘

  • Array
  • 입력 2014년 1월 10일 07시 00분


소박하지만 풍부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무장한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사진제공|쇼노트
소박하지만 풍부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무장한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사진제공|쇼노트
이종혁·마이클 리·김동완 주연…26일까지 서울 공연

허공에서 12.4m짜리 거대한 모형 드래곤이 포효하고, 금발미녀가 공중에서 눈부시게 하강하는 ‘위키드’, 화려무쌍한 LED 영상과 코앞에서 보면서도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매직을 보여주는 ‘고스트’. 세계 뮤지컬계가 그 동안 쌓아올린 기술적 진보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듯한 이런 작품들에 비해 ‘벽을 뚫는 남자’(이하 벽뚫남)는 싱거울 정도로 아날로그적이다.

무대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조명도 특별한 색깔이나 분위기를 강조하지 않는다. 음악은 상다리 부러지는 한정식이 아니라 좀 푸짐한 백반에 가까운 느낌이다. 제목처럼 주인공은 틈나는 대로 벽을 뚫고 지나다니지만 특수효과라고 하기엔 낯이 간지러울 정도다. ‘고스트’에서 샘이 보여주는 최첨단 벽 통과하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작품을 사랑한다. 현란한 무대장치와 볼륨감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각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와는 확실히 다른 프랑스 뮤지컬만의 감성도 한몫했다.

‘벽뚫남’은 어느 날 갑자기 벽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우체국 직원 듀티율의 이야기를 유쾌발랄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렸다. ‘벽뚫남’ 음악의 가장 큰 미덕은 친숙함이다. 처음 작품을 보는 사람도 흥얼흥얼 배우의 노래와 반주를 따라할 수 있을 정도다. 비슷한 멜로디가 또 나오고, 또 나오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다. 이 음악은 미셀 르그랑의 작품이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고? 당연하다. ‘쉘부르의 우산’, 영화 ‘007시리즈’ 등으로 세 번의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다섯 번의 그래미상을 받은 거장이니까.

소박한 밥상이지만 맛깔스럽게 늘어놓고 수저를 권하는 이들은 배우다. ‘벽뚫남’ 묘미 중 하나는 11명의 배우가 등장해 23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 듀티율은 2012년에도 듀티율을 맡았던 이종혁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미스사이공’ 등 브로드웨이와 한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리, 그리고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이 맡았다.

‘벽뚫남’에서 가장 큰 웃음을 주며 관객에게 사랑받는 알코올중독 의사 듀블은 고창석과 임철형이다. 배우 겸 연출가로 2012년 ‘벽뚫남’에서 연출을 맡았던 임철형은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로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사의 전설 중 한 명인 이정화가 ‘매춘부’ 역으로 출연한 것은 상당히 놀랍다.

1월 26일까지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뒤 인천, 대전, 전주 등 지방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순회공연에 들어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