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명칭 난무하는 식물이름… 우리말 어원따라 바로잡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1일 03시 00분


[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한국식물생태보감’ 펴낸 김종원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1’을 펴낸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본디 우리말에는 입이 넓거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을 ‘풀’, 잎이 좁거나 먹을 수 없는 식물을 ‘새’로 구별했을 뿐 잡초(雜草)라는 개념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원 교수 제공
‘한국식물생태보감 1’을 펴낸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본디 우리말에는 입이 넓거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을 ‘풀’, 잎이 좁거나 먹을 수 없는 식물을 ‘새’로 구별했을 뿐 잡초(雜草)라는 개념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원 교수 제공
우리 식물 이름 중에는 민망한 게 많다. 그래도 순우리말이라고 믿고 불러왔다. 하지만 상당수가 본디 우리말이 아니란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일본어를 우리식으로 표기한 것도 있단다.

“대표적인 게 며느리밑씻개입니다. 본디 사광이아재비라는 우리말 이름이 있었는데 ‘계모에게 학대받는 의붓아들 궁둥이 닦기’라는 뜻을 지닌 일본명 ‘마마꼬노시리누구이’를 우리식으로 의역하면서 본명이 잊혀졌습니다. 외래종인 개불알풀도 열매 모양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번역한 것입니다. 서양에선 개불알풀을 베로니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보고 눈물을 훔친 성녀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이 꽃잎 속에 나타난다고 붙여진 것입니다.”

2000쪽 분량의 ‘한국식물생태보감 1’(자연과생태)을 펴낸 김종원 계명대 교수(57)의 말이다. 이 시리즈는 남한에 서식하는 우리 식물 3500여 종을 10권에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식물도감과 많이 다르다.

“기존 식물도감이 인간 중심으로 분류됐다면 제 보감은 식물 중심으로 꾸며봤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사는 식물부터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심산유곡에 사는 식물 순으로 정리해 나갔습니다. 1권에 소개된 식물은 ‘집 안팎과 길가’ ‘논과 밭’ ‘들길 제방, 무덤 풀밭’ 순으로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382종부터 시작했습니다. 또 가나다순을 따르지 않고 우리 생태계에 등장한 차례를 따랐습니다.”

식물 중심이라면서 인간 주변 식물부터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익숙하게 쓰고 있지만 잘못된 명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30년 넘게 식물학을 공부해왔는데 명칭이 엉터리인 경우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오리나무의 경우 오리목(五里木)이라는 한자명을 병기하면서 ‘오리(2km)마다 심은 나무’라고 설명합니다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이 나무가 자라는 저습지에 오리가 많이 서식해 오리나무가 된 것인데 검증 없이 받아쓰기를 계속해온 탓입니다. 이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우리 주변의 익숙한 식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 식물생태보감에는 해당 식물의 이름이 그 식물의 특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라틴어 학명의 어원, 중국과 일본의 식물명과의 비교도 확인할 수 있다.

“20년 전에 친한 미국인 학자에게 우리말 나물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나물은 그냥 한국 발음 그대로 나물로 해야 맞다. 나물 문화야말로 한국만의 독특한 생태문화’라고 답하더군요. 그때부터 우리 식물명의 가치에 눈을 뜨고 어원을 추적했습니다. 그러다 동의보감이 옛 식물명의 보고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문으로 쓰였지만 민초들도 쉽게 알 수 있게 약초명이 등장할 때는 한글 표기를 병기했습니다. 책 제목에 보감이란 표현을 넣은 것은 이에 영감을 받아서입니다. 동의보감이 나오면서 한국 한의학이 중국 한의학에서 독립했듯이 외람되지만 제 책이 서양 식물학이나 일본 식물학에서 독립된 우리 식물학의 토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한국식물생태보감#김종원#식물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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