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 조선의 갑옷과 투구, 인광노(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종의 정치 외교 고문이던 묄렌도르프가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투구 앞뒤에는 용과 봉황이 금빛으로 새겨졌다. 붉은 털 머리 장식에는 푸른 보주(寶珠)와 화염무늬가 강인함을 드러냈다. 4개의 발톱을 가진 용 조각이 어깨에 올려진 융(絨)으로 짠 갑옷에는 당시 장수의 용맹한 기상이 생생하게 배어 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보면 이 박물관은 조선 19세기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일체)를 12점이나 갖고 있다. 당대의 갑주는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30여 점 정도만 파악될 정도로 희귀한 유물이다.
박물관은 조선의 당시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국의 민속유물을 300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민속박물관이 어떻게 이만한 유물을 소장하게 된 걸까.
여기에는 ‘조선에서 벼슬을 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와의 인연이 숨겨져 있다. 고종의 정치·외교 고문을 지냈던 묄렌도르프는 다양한 정치 활동과 별개로 학술 방면에서도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독일은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커 제3세계 민속자료 수집에 적극적이던 시기. 박물관 유물은 상당수가 당시 묄렌도르프가 직접 현장을 뛰며 모은 것이다.
묄렌도르프가 1883∼1884년 박물관과 교환한 서신들을 보면, 모두 15개 항목으로 나눠진 목록표가 등장한다. 항목에는 무기류나 필기구는 물론이고 주거용품 화장용품 주방기구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시장 좌판을 싹 쓸어가거나 아예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유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갑주 일체를 내의와 투구싸개, 보관함까지 ‘풀세트’로 갖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 덕분에 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는 현재 국내에선 찾을 길 없는 독특한 유물도 하나 있다. 19세기 서민이 발화도구로 썼던 인광노(引光奴)다. 기다랗고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바른 성냥의 일종이다. 이익(1681∼1763)이 집필한 성호사설에는 “밤에 급하게 등불을 켤 때 즉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며 인광노를 설명한 대목도 나온다. 일제강점기 공장제 성냥이 들어오며 자취를 감췄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1950년대 북한 유물도 1000점가량 된다. 과거 동독이었을 때 북한 정부가 교류 차원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공산품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다. 박물관의 디트마 그룬트만 동아시아 유물담당 큐레이터는 “다양한 한국 유물을 소장해왔으나 그간 기초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문화재연구소와의 교류를 통해 의미 있는 학술연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