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겐 창작 인큐베이터… 도시 빈민에겐 활력의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6일 03시 00분


[세계의 ‘창조 발전소’를 가다]<2>파리의 복합문화공간 ‘상카트르’

프랑스 파리 19구의 상카트르 중앙광장에서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청소년들. 상카트르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이 콘서트와 전시 등을 즐기는 복합문화센터다. 파리=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프랑스 파리 19구의 상카트르 중앙광장에서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청소년들. 상카트르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이 콘서트와 전시 등을 즐기는 복합문화센터다. 파리=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920만 명.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지난해 관람객 숫자다.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인 파리를 찾은 외국 관광객은 지난해 2800만 명.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코스는 세계 최대 규모인 38만 점의 미술품을 소장한 루브르박물관과 인상파 회화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 그리고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퐁피두센터다. 모두 예술이 테마인 곳이다.

이처럼 파리는 ‘예술로 밥 먹고 사는’ 도시다. 그래서 파리시는 ‘밥벌이’를 책임지는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파리 동북쪽 19구(區)의 복합문화공간 ‘상카트르’(Centquatre·104)는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 이곳의 이름은 주소(19구 오베르비예로·路 104번지)에서 따왔다.

○ 일반인에 개방된 아틀리에

상카트르에는 예술가의 아틀리에 20여 개가 있다. 전 세계 예술가들을 상대로 공모를 거쳐 무상으로 내준다. 지난해에는 350여 명의 예술가가 상주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2008년 첫 상주자 공모에는 세계에서 3000명이 넘는 예술가가 지원했다. 한국인 설치미술가 이희원 씨도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자존심 강한 예술가들은 대개 외부인에게 아틀리에를 잘 공개하지 않지만 이곳은 예외다. 예술가들은 일주일에 3회 이상 일반에 아틀리에를 공개해야 한다. 상카트르 홍보담당 발레리 센호 씨는 “대중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개방성이 창조력을 높이는 비결이다”라고 설명했다.

아틀리에 공개는 다른 장점도 있다. 작업실에서 만난 목공예가 아루나 라트나야케 씨(30)는 “작업실이 일반에 개방돼 있으니 내 작품을 상품화할 투자자가 쉽게 찾아올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상카트르 건물은 1873년 신축될 당시엔 도살장이었고 1905년부터는 장례식장으로 사용됐다. 2001년 리노베이션을 시작해 2008년 10월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리노베이션에는 7년간 1억 유로(약 1450억 원)가 투입됐다. 건물 두 동으로 이루어진 상카트르는 면적이 축구장 6개 크기인 3만9000m²에 이른다. 여기에 창작 아틀리에와 패션쇼, 전시, 공연을 위한 2개의 컨벤션홀을 갖췄다.

○ “범죄 예방에도 효과”

상카트르는 지역민에게 명소다. 기자가 방문한 날 상카트르 중앙광장에서는 젊은이 50여 명이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상카트르의 모든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고교를 중퇴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흑인 소녀 오몽 로리안 양(18)에게 상카트르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매주 화요일 여기서 브레이크댄스 연습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이곳에선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춤에 몰두할 수 있죠. 지역 청년들에게 이곳은 자유를 만끽하는 명소예요.”

상카트르에서는 매년 수백 편의 공연이 열린다. 지난해 연극 무용 콘서트 등의 티켓을 구입한 관객은 50만 명에 이른다. 자유롭게 찾아와 즐기는 청소년을 합하면 연 2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다녀간다.

19구는 파리의 빈민가다.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며 60%가 주택 보조비를 받는다. 실업률은 20% 가까이 된다. 프랑스 정부는 2012년 말 방범활동을 강화할 치안우선지역으로 전국 49곳을 발표했는데 19구는 가장 먼저 언급됐다. 취재 중 만난 경찰관은 “절대 혼자서는 골목길을 걷지 말라”고 했다. 파리시는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면 지역 활성화와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상카트르를 설립했다.     
     
▼ 문화로 번 돈 82조원… 자동차 산업의 7배 ▼
佛문화예술이 창출한 가치


프랑스 하면 루브르박물관, 세계 최고 권위의 칸국제영화제와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등 문화예술 분야가 먼저 떠오른다. 문화강국 프랑스의 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프랑스 문화부와 재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문화예술이 창조한 부가가치를 뜻하는 ‘문화 국민소득(Cultural GDP)’은 약 570억 유로(약 82조 원). 이는 자동차산업(80억 유로)의 7배, 화학산업(140억 유로)의 4배, 전자통신산업(250억 유로)의 2배가 넘는 수치다. 낙농과 포도주로 유명한 프랑스 농업이 창출한 가치(600억 유로)와 비슷하다.

문화예술은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2.5%인 67만 명이 문화예술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훈련생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87만 명에 이른다.    
    
▼ 또 하나의 예술명소 ‘팔레 드 도쿄 창작연구소’ ▼
신진작가 선발… 생활비-제작비 지원하며 집중 양성


팔레 드 도쿄는 전위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팔레 드 도쿄 제공
팔레 드 도쿄는 전위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팔레 드 도쿄 제공
파리 시내 서쪽 16구(區)의 미술관 ‘팔레 드 도쿄’는 관광 명소다.

이곳은 기발하고 재밌는 현대미술 작품과 마감이 덜 된 듯한 내부 인테리어로 관람객을 끌어모은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1937년 파리세계박람회 당시 일본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영화박물관을 거쳐 2001년부터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팔레 드 도쿄에는 전시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곳은 신진 작가들의 꿈을 키워주는 예술가 사관학교이기도 하다. 부설 ‘팔레 드 도쿄 창작연구소’가 그곳이다.

미술관 개관과 동시에 설립된 창작연구소는 배고픈 예술가를 지원해 왔다. 연구소는 사진 공연 공예 조각 연극 등의 예술을 지원하는데, 선발기준은 예술학교 졸업생 중 활동을 시작하지 못한 30세가량의 작가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선발 기준이 지원자들의 개인 역량이 아닌 다른 예술가와의 협업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크리스티앙 메를리오 창작연구소장은 “창의력은 예술가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 재능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라고 설명했다.

선발된 예술가들은 공동작업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멘토로 참여해 지도한다. 이 밖에 1인당 매월 1000유로(약 145만 원)의 생활비와 작품 제작비를 지원받고 팔레 드 도쿄에서 전시할 기회도 주어진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120여 명의 예술가가 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명품업체와 앱솔루트 보드카 등의 기업들이 연구소를 후원한다.

파리=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프랑스#파리#상카트르#부가가치#일자리 창출#팔레 드 도쿄 창작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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