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는 수많은 대작곡가들의 이름으로 장식되지만 한편으로는 주목을 덜 받는 조연도 많죠. 영화 ‘아마데우스’로 알려진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제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베토벤 전기에 이미 ‘자애로운 살리에리 선생님’으로 등장했거든요.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은 사실일까요? 그가 나이 들어 정신착란 속에서 모차르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뇌까렸던 탓에 독살설이 퍼졌지만, 그것은 오히려 모차르트의 불우한 요절을 애석해했던 그의 ‘따뜻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음악사에는 ‘가족 조연’도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지인이었던 작곡가 라흐너 집안이 그렇습니다. 4형제인 테오도어, 프란츠, 이그나츠, 빈첸츠 모두 슈베르트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특히 둘째 프란츠 라흐너(1803∼1890·사진)가 여섯 살 위의 슈베르트와 가장 친했고 작곡가로도 가장 인정을 받았습니다.
슈베르트의 전기를 읽다 보면 그의 이름이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슈베르트가 가곡 ‘죽음과 소녀’를 현악4중주로 만들었을 때 라흐너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 곡이군’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결국 슈베르트는 생전에 이 곡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사후 37년 만에 햇볕 아래 나왔던 일도 라흐너와 관계가 있습니다. 지휘자 헤르베크가 오래전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휘텐브레너에게 ‘슈베르트와 라흐너, 또 당신 동생의 곡을 모아 콘서트를 하려 하는데…’라고 말하자 휘텐브레너가 “내게 슈베르트의 미발표 교향곡이 있네”라며 주섬주섬 서랍에서 꺼내 보여준 곡이 ‘미완성 교향곡’이었죠.
프란츠 라흐너는 교향곡 8곡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오늘날 많이 연주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목관 합주곡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을 오늘날 들어보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가득하고 슈베르트의 작품과도 닮았습니다. 마침 20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24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의 막내아우이자 당대에 꽤 유명했던 이그나츠 라흐너도 22일에 121번째 기일을 맞는군요. 얼마 전까지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인물들이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상은 이 ‘조연’ 작곡가들의 작품도 한층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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