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20세기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 지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세기/알랭 바디우 지음·박정태 옮김/324쪽·1만8000원·이학사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우리가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20세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그는 “20세기가 ‘이데올로기나 공허한 환상’에 대한 열정이 아닌 ‘실재’에 대한 열정이 지배한 시대”라며 옹호한다. 동아일보DB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우리가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20세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그는 “20세기가 ‘이데올로기나 공허한 환상’에 대한 열정이 아닌 ‘실재’에 대한 열정이 지배한 시대”라며 옹호한다. 동아일보DB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칭했다. 양차대전이란 전쟁과 학살,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같은 혁명, 기술문명과 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인구 증가와 빈부 격차가 교차하는 20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극단’으로 잡은 것이다. 그가 아니더라도 많은 학자들은 20세기를 이념, 혁명, 전쟁, 학살, 테러라는 부정적 키워드로 포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77)는 이런 20세기야말로 ‘실재에 대한 열정’이 지배한 시대였다고 옹호한다. “20세기를 지배한 열정은 이데올로기나 공허한 환상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실재는 프랑스 정신분석철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상상(거짓현실)과 상징(사회적으로 재구성된 현실)에 맞서는 미지와 공포의 진짜 현실을 말한다. “19세기가 무엇에 대한 상상적인 것이었다면, 20세기는 이 무엇의 실재입니다. 19세기가 무엇에 대한 상징적인 것이었다면, 20세기는 이 무엇에 대한 실재입니다.”

세기가 전환되는 1998∼2001년 프랑스 파리의 국제철학학교에서 13차례에 걸쳐 펼친 바디우의 강의를 바탕으로 2005년 발간된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20세기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1914년 1차 대전 이전의 황금기인 벨 에포크를 가능하게 한 것이 곧 양차대전과 대학살 같은 비극을 초래한 것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혁명의 이탈이나 광기가 아니라 혁명의 본질적 실현이다. 그것은 곧 19세기가 약속·사유·예언한 것을 실현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내겠다’는 열정이다. 19세기가 기계적·열역학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실증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유기체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창조의 시대였다. 니체가 말한 생기와 의지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유기체적 세계관은 곧 생명(긍정)과 죽음(부정)이라는 둘의 사유로 이뤄진다. 옛것(상상 내지 상징)의 죽음과 새것(실재)의 탄생이다. 문제는 옛것은 실체가 뚜렷한데 새것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20세기의 비극은 여기서 발생했다. 하지만 그 부정성에만 압도돼 긍정성을 간과하는 것은 19세기식 기계적 세계관으로의 회귀 아니면 21세기적으로 무의미한 죽음의 보편적 배분만 초래할 뿐이다.

바디우는 그의 대표작 ‘존재와 사건’(1988년)에서 예술, 정치, 과학, 사랑이라는 네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건에 담긴 의미를 주체적으로 사유해 낼 때 진리를 포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책은 그 구체적 실천이다. 러시아 시인 만델스탐,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의 예술, 레닌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치, 칸토어와 부르바키의 과학(정확히는 수학), 프로이트와 브르통의 사랑의 텍스트를 종횡사해하며 ‘저주받은 세기’로 불린 20세기를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건’으로서 재구성해낸다. 독해가 쉽진 않지만 ‘지적 경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옮긴이는 바디우의 지도 아래 들뢰즈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3개의 강의를 현장에서 직접 들었다. 그런 그도 이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해가 먼저고 비판은 다음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세기#20세기#알랭 바디우#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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