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삶에 엄숙하되, 때론 흔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작가란 무엇인가/파리 리뷰 지음/권승혁 김진아 옮김/496쪽·2만2000원·다른
◇리추얼/메이슨 커리 지음·강주헌 옮김/452쪽·1만5000원·책읽는수요일

《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뇌하는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주목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작가란 무엇인가’가 한 작가의 세계를 충실하게 그린 점묘화라면 ‘리추얼’은 그들이 행하는 일상의 의식에 돋보기를 비춘 세밀화다. 》


‘작가란…’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1953년 창간된 미국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실린 것들을 추렸다. 파리 리뷰는 인터뷰를 하나의 문학 장르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인터뷰어를 엄격하게 선정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차례 만난 결과다. 이언 매큐언(66)은 1996년 첫 인터뷰 이후 2001년 겨울까지 수차례 만난 끝에 2002년에 인터뷰 기사가 게재됐다.

출판사는 파리 리뷰에서 지금까지 인터뷰한 작가 250여 명 중 국내에 소개된 79명을 대상으로 문예창작학과 대학생 100여 명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가 누구인지 물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6명의 작가를 선정했고 1차로 12명의 인터뷰를 묶었다.

파리 리뷰 인터뷰는 작가가 글을 쓰는 목적, 글을 통해 만들어 내는 세계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육성으로 펼쳐지는 작가론, 창작론이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82)의 장난기 넘치는 말투, “진부한 질문을 하면 낡고 진부한 대답을 듣기 십상”이라고 일갈하는 헤밍웨이(1899∼1961)의 성마른 성미,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고 단편소설 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노력은 소설가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7)가 옛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만드는 과정, 친구가 자신의 눈앞에서 번개에 맞아 세상을 떠난 사건이 폴 오스터(67)의 인생관을 결정했다는 비화도 알게 된다.

작가가 거둔 외적 성취의 이면에 숨겨진 의외의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62)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인 발언으로 터키 내에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젊었을 때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프루스트의 작품을 좋아했고, 스타인벡, 고리키 같은 사회적 리얼리즘 모델을 열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무라카미 하루키(65)는 ‘노르웨이의 숲’이 실은 전략적으로 쓴 작품이라고 털어놓는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고유한 스타일과 가깝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을 좋아하지 않고, 초현실주의에 끌리지만 컬트작가로 인식되기 전에 리얼리즘적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하루키 인터뷰는 2004년에 한 것이다. 그가 지난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통해 다시 리얼리즘으로 돌아온 것은 어떤 전략인지 궁금해진다.

오스터는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상상력이 작동하게 하려면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창작의 고통은 깊고 작업은 외롭고 지난하다고 작가들은 인터뷰에서 토로한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쪽을 서른아홉 번이나 고치고서야 겨우 만족했다.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소리와 분노’ 전체를 화자를 바꿔 다섯 번 고쳐 썼는데도 1958년 인터뷰 당시 “아직도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가란…’이 창조적 행위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했다면, ‘리추얼’은 그 주변을 탐문한다. ‘메트로폴리스’ 잡지 편집장을 지낸 ‘리추얼’의 저자는 ‘모두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작가 안무가 작곡가 화가 영화감독 과학자 철학자의 하루 시간표와 작업습관을 샅샅이 탐색한 끝에 161명의 일상 습관을 압축 정리했다.

‘리추얼’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예술가들의 생활 방식이 펼쳐진다. 조르주 상드는 매일 밤 20쪽 이상의 원고를 쓰면서 “밤이야말로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어둠을 즐겼다. 하루키는 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체력도 예술적 감성만큼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음주량도 줄이고 채소와 생선 위주의 식사를 한다. 차이콥스키(1840∼1893)는 미신처럼 매일 2시간의 산책을 엄격하게 지켰다. 반면 필립 로스(81)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 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응급실 의사와 비슷하다”고 했고,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은 “숙취 상태에서 작업하는 게 좋다. 내 머리가 활기차게 우직거려서 내가 한층 더 또렷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일탈에서 영감을 얻기보다 자신의 일상을 파고들어 창작에 몰입했다. 가장 평범한 시간이야말로 소중한 순간임을 일깨워 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작가란 무엇인가#리추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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