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조직을 지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불교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스님이었지만 환속(還俗)한 뒤 이제는 재가불자(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자)로 불교 철학과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 저자가 서문에 남긴 말이다. 영국 런던 근교에서 성장한 서양 젊은이가 불교를 40여 년간 접한 뒤 날린 일침이기도 하다. 또 10여 년의 출가 생활을 끝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 아닐까?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려던 저자는 입시에 실패한 뒤 떠난 여행에서 불교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불교 공동체에 합류한 뒤 출가했고 이후 파란 눈의 스님으로 살았다.
책은 크게 스님으로 지낸 때와 환속 후 재가불자로 살아가는 시기,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렇다고 개인사가 촘촘하게 담겨 있는 자서전은 아니다. 삶의 여정과 함께 저자가 수시로 느낀 불교에 대한 고민과 각종 경전에 대한 해석이 교차한다.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서양인으로서 불교를 선택한 이유와 환속 등 개인사가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책 중간에 저자는 “나는 양쪽 진영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게 극도로 불편하다”고 고백한다. 한쪽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스님의 지도를 통해 얻은 불교, 다른 쪽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 등으로 대표되는 서양적 사고관이다. 불교가 주는 마음의 평화와 수행법을 받아들였지만, 지나치게 신비화된 불교 조직과 스님들의 모습은 그에게 의문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선불교 수련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던 그는 서양 출신의 비구니 성일(마르틴) 스님과 전남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의 지도를 받는다. 그는 “송광사에서 보낸 몇 년이 내가 스님으로 보낸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챘으리라. 저자의 도반인 성일 스님 역시 환속했다. 성일 스님은 다시 마르틴이 돼 저자와 결혼한다. 같은 수행자로 살다 환속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지만, 아쉽게도 충분한 ‘고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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