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지럽게 얽혀 있는 크고 작은 가스관, 검은 연기를 뿜어댈 것 같은 발전용 굴뚝. 최근 찾아간 중국 베이징(北京) 북동쪽의 ‘751D·PARK 베이징패션디자인광장’엔 가동이 중단된 옛 발전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중유탱크 안에서는 3차원(3D) 입체영상이 튀어 나오고, ‘제1작업장’이라고 쓰여 있는 석조 공장 안에서는 세계 2위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가 휴대전화 발표회를 열고 있었다. 20세기 산업시설이 21세기 문화산업과 만나는 이곳은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창의 혁명의 현장이다. 》
○ 옛 발전소 자리에 들어선 창조발전소
751D·PARK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798예술구’와 붙어 있다. 798예술구가 순수 예술 중심지라면 22만 m² 규모의 751D·PARK는 패션디자인 산업과 전시·컨벤션 기능을 한데 모아 놓은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1954년 국영기업인 정둥(正東)전자동력집단이 세운 석탄가스 생산 기지였다. 정둥전자동력은 석탄가스를 이용해 베이징 일대에 난방을 공급했다. 발전소와 공장이 서 있던 지역이 패션디자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건 베이징 시 정부의 문화창의산업 육성 정책 때문이다. 시는 2003년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고 이곳을 ‘창의 산업 기지 및 패션 체험장’으로 지정해 2007년 3월 문을 열었다. 기자를 안내한 창의산업판공실 옌밍단(嚴明丹) 부주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 시설물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되 내부는 각종 공연과 전시가 가능하도록 꾸몄다”고 설명했다.
751D·PARK의 크고 작은 공간엔 ‘패션디자인광장’ ‘디자이너 빌딩’ 외에도 ‘동력광장’ ‘용광로광장’ ‘1호 탱크’ ‘7000m² 가스탱크’ 등 옛 발전소의 자취를 담은 이름들이 붙어 있다. 패션디자인광장의 경우 4층짜리 옛 금속 저장고를 패션상품 발표 센터와 사무실 등으로 꾸몄다. 입주 기업은 84개사. 일반 의류회사는 물론이고 독일 자동차업체 아우디의 아시아디자인센터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 재능 있는 학생과 기업을 이어주는 발전소
751D·PARK가 패션디자인 산업 전시장을 넘어서 중국을 대표하는 창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산관학을 연결하는 운용 방식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3월 차이나패션위크를 비롯해 대학생패션주간(4월), 베이징 국제전자음악제(5월), 국제디자인전(9월)까지 연간 100개가 넘는 행사가 열린다. 또 ‘중국-이탈리아 건축 토론회’ 같은 디자인 강국과의 교류 활동도 정기적으로 갖는다.
지난해 대학생패션주간에는 칭화(淸華)대 베이징푸좡(服裝)학원 중화여자학원 중앙미술학원 등이 참가했다. 기업이 학생들의 창작품을 그 자리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패션 전공자들에게는 이곳에 작품을 출품하는 게 영광일 뿐만 아니라 졸업 후 취업을 돕는 든든한 이력이 된다.
실제로 영화감독 천카이거(陳凱歌)의 전 부인이자 패션그룹 중국 후둥(互動)매체집단의 최고경영자(CEO) 훙황(洪晃)이 직접 대학생패션주간에 참가하고 출품작 일부를 회사 매장에서 판매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옌 부주임은 “대학생패션주간이 아니더라도 자동차 디자인전 등 일반 행사에 학생들을 자주 초청한다는 게 시의 방침이며 이 과정에서 학교와 기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말했다.
○ 한국 창의 산업엔 중국 진출 교두보
751D·PARK는 한국의 문화 관련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도 한다. 박철홍 751한중문화협력교류센터 대표는 높이가 15m인 벙커C유 탱크 2곳의 내부에 둘레가 80m인 360도 스크린을 설치한 ‘751라이브탱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3D 영상물이나 디지털 예술품을 전시한다. 현재는 유명 회화 작품을 디지털화해 그림 속 모델이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많게는 하루 2000명 이상의 관객이 찾는다고 한다.
박 대표는 “베이징 시가 문화창의기금을 지원하는 등 창의 산업 취지에 부합하면 외국 기업들도 적극 밀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CJ가 751D·PARK에 드라마 세트장을 지었고 JYP엔터테인먼트도 진출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글로벌 문화대국 도약 ‘中國夢’ 완성 ▼ 중국의 ‘소프트 파워’ 육성 전략
“국가의 문화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궈멍(中國夢·차이나드림)과 관련이 있다. 문화 소프트파워를 키워 당대 중국의 가치관을 전파하고 중화문화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줘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정치국 위원 25명 전원을 모아놓고 한 얘기다. 중국이 문화를 산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대국이 갖춰야 할 소프트파워로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201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커진 몸집으로 목소리를 키우는 중국에 대해 주변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긴장한다. 중국의 국가이미지 향상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중국의 문화산업 규모는 2012년 현재 약 4조 위안(약 710조 원)이며 최근 수년간 매년 2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게임 여행 등 여가와 오락 분야의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이 같은 성장세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육성 정책 덕분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중국문화산업진흥계획’을 통해 문화산업을 11번째 국가 전략산업으로 승격시켰다. 2012년엔 ‘12차 5개년 문화개혁 발전계획 강령’을 통해 2015년 문화산업 규모를 2010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10대 도시 공연장 건설 △연예산업 발전자금 운영 △문화산업단지 육성 △5∼10개의 애니메이션기업 육성 △세계 10대 게임기업 육성 등 구체적 방안이 제시됐다.
중국은 문화산업을 정의할 때 영화 드라마 출판 엔터테인먼트 등 기존 영역에 더해 문화 창의라는 영역을 추가한다. 문화 창의는 창의성과 지적재산권을 강조한 개념이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미국 할리우드는 중국적인 소재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제작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중국은 스스로 무궁무진한 문화 소재를 발판 삼아 세계에 나가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산자이(山寨·짝퉁을 뜻하는 중국어) 천국이자 넘쳐나는 불법 다운로드 등 지식재산권 유린의 대표적 국가인 중국이 문화 창의를 통해 진정한 글로벌 문화대국으로 성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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