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교육방송(EBS) 개국과 함께 매주 한차례씩 방영된 ‘EBS 바둑교실’이 1200회를 넘겼다. 9일 1201회가 방영된다. 그런데 이 프로는 단 한 명이 24년여간 결방 없이 진행해 왔다. 프로 기사 양상국 9단(65·사진)이다.
그의 기록은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온 송해 씨나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그리고 2010년부터 다시 ‘가요무대’를 진행하는 김동건 아나운서와 견줄 만하다.
양 9단이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바둑보급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진통제를 맞고 진행한 적도 있고 녹화 때문에 장인상 때 발인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다. 애주가인 그는 녹화 전날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녹화 당일에는 산에 올라 A4 용지 2장 정도로 요약해 놓은 줄거리를 외우다시피 한다. 그는 “눈감고 술술 나올 정도가 돼야 방송이 순조롭다. 방송에서 ‘적당히’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기억나는 일로 800회 방송 때 전국 교사 200명을 모아 바둑대회를 연 것을 꼽았다. 그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는 것. 요즘도 택시기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는 “잘 배우고 있다”고 말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양 9단은 TV 바둑해설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틀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1시간짜리 프로의 구성과 내용을 본인이 직접 만들고 있다. 사활과 맥, 포석 등 이론을 살펴보고 아마추어 실전분석을 해주는 포맷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특히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한자 경구나 한시로 풀어내는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예컨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를 소개하면서 “말을 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는 뜻”이라고 알려주고 “아내와도 소통을 해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식으로 이어간다.
24년간이나 프로를 진행하다 보니 함께 프로를 진행한 사람도 열댓 명이나 된다. 현재 파트너인 하호정 3단을 비롯해 여성이 10명이 넘고, 남자 중에는 개그맨 엄용수, 만화가 강철수 씨도 있었다.
양 9단은 “요즘 바둑 팬들이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은행 기우회가 봄가을 주최하는 바둑대회에 지도사범으로 나가 보면 조순 총재나 박승 총재 시절에는 100명을 훌쩍 넘겼는데 최근에는 20명에서 30명 정도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그는 “바둑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딸에게는 바둑을 가르치지 않았다. 지금은 여자 기사도 꽤 되지만 딸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바둑 두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인은 5급 정도의 실력. 그의 바둑교실은 이번 방송프로 개편 때 폐지된다. 이미 녹화해 놓은 1203회(23일 오전 9시 반 방영)가 마지막이다. 그때 나올 클로징 멘트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이고, 떠나면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뜻이지만 과연 그럴지…. 그는 종방을 매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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