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나 TV 드라마에서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를 ‘오빠’라고 불렀다가 시댁 어른께 혼이 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정말 친남매가 아니면 오빠란 말을 쓰면 안 되는 걸까?
오빠와 관련된 단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조선 영조 때 언어학자 황윤석(1729∼1791)이 지은 어원연구서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이다. 이때 어형은 ‘올아바(오라바)’였다. ‘이르다’는 뜻의 접두어 ‘올-’과 ‘아바(아버지 또는 남자)’가 결합한 것으로 ‘아버지보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 정도로 해석된다. 이후 19세기 말 문헌에 ‘옵바’, 20세기 초반에는 ‘업바’ ‘오e’ ‘오빠’로도 등장한다.
19세기까진 주로 손위나 손아래 남자동기를 지칭할 때 두루 쓰이다 20세기 들면서 혈연이 아닌 남녀 사이에서 오빠-동생 호칭이 등장한다. 하나님 앞에 평등한 형제자매라는 기독교 개념과 ‘확대된 가족’으로서 민족 개념이 도입되면서 평등한 남녀관계의 호칭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1917년)에서 주인공 이형식은 이 같은 이유로 기생 계향에게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한다. 전통적 신분 질서가 파괴됐음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이후 소설 속에서 ‘옵바’라는 말은 젊은 남성에 대한 젊은 여성의 성적 호감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광수의 ‘재생’(1925년)에 등장하는 윤 변호사가 자신의 약혼녀 선주에게 “여보시오, 인제부터 그 사람더러 오빠라고 마시오! 오빠는 무슨 오빠란 말이오? 그 사람이 무슨 친척이란 말이오? 나는 그 말이 듣기가 싫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빠가 남녀 연애를 암시하는 기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빠를 이렇게 정의한다. ①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손위 남자 형제를 여동생이 이르거나 부르는 말. ②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21세기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늘날 오빠라는 호칭에 성적 불평등성이 숨어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둘 사이에 나이에 따른 권력관계가 생겨나고 여성은 보호할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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