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인들은 깊이 안으로 들어가 왕비를 끌어내 칼로 두세 군데 상처를 입히고 발가벗겨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습니다. 우스우면서도 분노가 치밉니다. 마지막으로 기름을 부어 소실했는데 이 광경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쓸 수가 없습니다. 궁내 대신 또한 몹시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합니다.”
을미사변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이시즈카 에조(당시 조선 정부 내부 고문관)가 일본 법제국에 보낸 보고서 중의 일부다. ‘에조 보고서’는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능욕살해사건의 전모가 담긴 결정적인 단서가 됐던 문건. 이 보고서는 명성황후 시해 이후 70여 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아니 철저하게 숨겨져 왔다. 이 보고서가 어느 날 한 한국 소설가에 의해 공개된다. 김진명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 명성황후 시해의 전모 ‘에조 보고서’를 아시나요
김진명은 어떻게 ‘에조 보고서’를 찾았을까. 대강의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그는 어느 날 일본 다큐멘터리 작가인 쓰노다 후사코의 ‘민비암살’이라는 책을 접한다. 그 속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들이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그는 여기에 언급된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에 의문을 품었다.
사실 ‘민비암살’이라는 책은 쓰노다 후사코가 한국과 일본을 50여 차례나 왕복해 사료를 모아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쓰노다라는 작가가 누군가. 글자 하나도 확인하지 않고는 집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라니?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일본인이 이렇게 표현했단 말인가.’ ‘뭔가 비밀이 숨어있구나’라는 작가 특유의 안테나가 작동했다. 그러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일본에서 외교사를 연구하던 지인에게서 ‘에조 보고서’와 관련된 책과 자료를 받는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의 한국병합’이라는 책. 이 책에 명성황후 시해의 능욕이 담긴 ‘에조 보고서’의 언급과 함께 출처가 담겨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일본 헌정도서관에 묻혀있던 ‘에조 보고서’의 전문을 찾았고 한국으로 들여와 공개했다.
● “이것은 나의 전쟁이다”…김진명이 ‘신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쓴 까닭
김진명은 ‘에조 보고서’를 근거로 명성황후의 최후를 증언한 장편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출간했다. 13년 전의 일이었다. 밀리언셀러가 됐다. 명성황후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혀낸 게 크게 작용했다. 그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다시 새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왔다. ‘新 황태자비 납치사건(김진명 지음 | 새움 펴냄)’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플롯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발맞춰 살짝 손을 댔다. 원래 두 명이었던 한국인 주인공이 한 명은 중국인으로 바뀌었다. 우리처럼 전범국 일본에게 당했던 중국의 비극적 사건인 ‘난징대학살’의 비밀과 참상을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김 작가는 왜 지금 ‘신 황태자비 납치사건’이란 책을 다시 썼을까. 그는 “지금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고 한다. 영토 분쟁지역화 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명성황후 살해, 독도 강탈, 한국 병탄은 일본의 과거사 3대사건으로 독도는 영토문제가 아닌 명백한 과거사 문제다”라며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명성황후 능욕 살해사건을 조사해 그들의 무도한 행위를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것은 나의 전쟁이다. 먼저 우리 독자들과 교감하고 다음으로는 중국 독자들에게, 그다음으로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본 국민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