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양성소 터가 논밭으로… 항일투사 하늘서도 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0일 03시 00분


[중국내 항일유적지 현주소]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건립 1개월 계기로 살펴본 관리실태

19일로 중국이 안중근 의사가 일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의거 현장인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개관한 지 한 달이 됐다. 이 기념관은 대표적인 한중 합작 사례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안 의사의 의거 현장에 표지석만이라도 설치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중국이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취재진이 중국 내 다른 항일 유적지를 둘러본 결과 흔적이 사라졌거나 엉뚱한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등 보존 및 관리가 소홀한 곳이 적지 않았다.

○ ‘흔적 없는 항일 유적지’

중국 베이징(北京) 중심부의 둥청(東城) 구 둥화먼(東華門)가도. 쯔진청(紫禁城)에서 직선거리로 1km가량 떨어진 이곳은 허름한 주택가지만 1940년대에는 일본 헌병대 감옥이 있었다. 이 감옥에서 ‘청포도’ ‘광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가 옥사했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옛 헌병대 감옥은 당시 지은 2층 벽돌 건물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지 면적은 약 3000m². 어떠한 표지도 없어 헌병대 감옥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제 패망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 가족들이 사용했으며 지금은 방치돼 있다. 이곳 토박이라고 밝힌 옆집 중년 남성은 “어릴 때부터 헌병대 감옥 터였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 등에 따르면 일부 유적지는 중국 당국이 세운 안내 표지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기술돼 있다. 지린(吉林) 성 룽징(龍井)의 윤동주 시인 생가 안내판에는 윤 시인이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으로 표기돼 있다.

지린 성 류허(柳河) 현에서 1919년 문을 연 신흥무관학교는 2년제 고등군사반을 둔 대표적인 독립군 양성소였다. 이시영 초대 부통령이 초대 학장을 지낸 곳이자 신민회의 독립운동 기지로 활용된 곳이지만 지금은 옥수수 밭과 논으로 변해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1924년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에 세운 황포군관학교는 우한(武漢) 분교 등을 합쳐 한인 독립운동가 200여 명을 배출했다.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 등도 이곳을 거쳤다. 안춘생 독립기념관 초대 관장도 이 학교 출신. 하지만 현재 ‘육군군관학교 기념관’으로 바뀐 이곳에 한인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랴오닝(遼寧) 성 신빈(新賓) 현 왕칭먼(旺淸門) 조선혁명군 주둔지는 조선족 소학교로 바뀐 뒤 폐교돼 건물이 헐리면서 어느 곳이 주둔지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독립기념관은 2005년 국외사적지팀을 발족한 뒤 2009년부터 5년간 중국 일본 유럽 미주 등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를 전수 조사했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의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현황에 따르면 중국 31개 성·시·자치구 중 23개 지역에 367곳의 사적지가 흩어져 있다. 전수 조사를 주도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국외사적지팀 김주용 박사는 “신흥무관학교나 황포군관학교처럼 ‘항일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곳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 중 지방정부의 적극 협조와 공동연구 필요

한국과 중국은 지금 일제의 침탈을 당해 싸웠던 역사를 공유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도 항일 유적 발굴과 보존에 대체로 적극 협조하고 있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사는 주변 지역이 재개발됐지만 옛 모습 그대로를 보존한 것은 한국의 요청을 중국 당국이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헤이룽장 성 하이린(海林) 시의 ‘한중우의공원’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공원은 김좌진 장군 등 항일 운동가들의 활동과 한인 이주사, 일제 침략사 등을 복합적으로 전시해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원의 운영 자금은 한국 정부에서도 일부 부담하고 있어 중국 당국에 전적으로 맡겨진 다른 유적지와는 다르다.

항저우(杭州) 임정 청사는 항저우 시가 복원 및 보존 관리를 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에게 한국어로 해설하고 있다. 다만 ‘중국인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한민족의 항일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 정부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유적지 관리에 중국 당국이 대체로 협조적이지만 아직도 협력할 분야는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北京)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과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의 ‘9·18 역사박물관’ 등은 한국 독립운동 조직이나 단체가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일본과 싸웠던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또 중국 내 유적지 중 임정 청사와 임정부 관련 인물은 상대적으로 많이 복원되어 있으나 사회주의 및 아나키즘(무정부주의) 계열의 민족운동 관련 유적과 인물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한 것으로 지적된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는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 관련 단체나 인물, 사건 관련 유적(지) 조사 연구 복원, 기념관이나 기념비 건립 때 중국 측이 1차 자료를 거의 공개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1920년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하자 그 보복으로 일본군이 자행한 한인 학살사건인 ‘경신 참변(간도 참변)’은 현지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제가 생체 실험을 한 헤이룽장 성 ‘731부대’ 관련 사건 역시 인적사항이 확인된 한인은 6명에 불과할 정도로 조사가 부족하다.

중국 당국이 중요 자료를 ‘당안(當案) 자료’로 분류해 외국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중 공동 연구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장 박사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개발로 한민족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도 빠른 속도로 없어지거나 파괴되고 있다”며 “한중 양국의 공동 연구와 발굴 보존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독립군 양성소#안중근 기념관#항일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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