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착취와 압정에 가담한 측의 인간이 과연 그리워하거나, 옛날 그대로 기뻐하거나… (해도 용인되는 것인가).”(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의 소설 ‘잘 있거라, 경성’ 중에서)
그들에게 이 산천은 고향이었다. 나고 자랐고 뛰어놀았던 땅. 하지만 한순간 영문도 모른 채 쫓기듯 떠나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깨달았다. 우리는 한국인에게 몹쓸 존재였구나. 어린애였노라 변명한들 그 죄의식은 씻기질 않았다.
일본 문단에는 ‘식민자(植民者) 2세’라 불리는 작가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태어나 주로 10대에 패망을 맞고 귀환해, 1950년대 이후 등단한 이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어린 시절 추억과 이후 알게 된 실상 속에서 겪은 모순과 갈등을 작품에 녹여냈다. 신승모 동국대 교수는 최근 학술지 ‘일본학’에 게재한 논문 ‘식민자 2세의 문학과 조선’에서 이들의 작품을 조명했다.
경남 진주 태생의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小林勝·1927∼1971)의 ‘눈 없는 머리’(1967년)는 식민자 2세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작품이다. 주인공 소년 사와키는 ‘언제나 상냥한’ 조선인 이경인을 따랐다. 하지만 이경인은 독립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이를 걱정해 면회를 간 사와키는 이전 모습은 사라지고 ‘괴물’처럼 변한 이경인을 발견한다. 사와키는 “아이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것에 부닥친” 느낌을 토로한다.
함경남도 출생인 고토 메이세이(後藤明生·1932∼1999)의 소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1972년)’는 좀더 직접적이다. 주인공은 독백처럼 “전쟁이 끝났을 때 소년시절은 끝났다”고 되뇐다. 철없던 유년의 추억조차 원죄로 떠올려야 하는 운명을 되새김질한다.
“저는 ‘태어난 고향’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요컨대 저희들은 고향에서 추방돼서, ‘조국 일본’으로 귀환해온 셈입니다. … 식민지로서 그곳을 지배하던 일본인 자손의 한 사람인 제가 그곳에서 추방된 것에 이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추방됐다고는 생각해도 결코 그곳을 빼앗겼다, 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1967년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한 소설 ‘이조잔영’의 원작자 가지야마 도시유키(1930∼1975)도 빼놓을 수 없다. 이조잔영은 1919년 3·1운동 때 일어난 ‘제암리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가지야마는 1961년 ‘사상계’를 이끌던 장준하 선생(1918∼1975)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이 귀국을 식민지로 삼던 시대의 죄를 도려내서 일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신 교수는 식민자 2세 작가들의 공통점으로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꼽았다. 이미 성인으로 한반도에 살았던 기성 작가들은 거리낌 없이 그 시절을 그립다 말하는데, 이들은 그마저도 조심스러워했다. 고바야시는 생전 마지막 에세이 ‘그립다고 해서는 안 된다’에서 안일하게 고향을 추억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신 교수는 “그들이 식민지 체험을 소재 삼아 작가적 입지 확립에 ‘이용’한 사실은 비판할 대목이나 작품에서 드러나는 진정성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댓글 0